런던 브릭 레인(Brick Lane) 근처에 위치한 드레이 워크 갤러리(Dray Walk Gallery)에는 자부심과 성취감이 넘쳐난다. 우리는 빌드(Build)의 회고전인 ‘블러드 스웻 앤 일레븐 이어스(Blood, Sweat & 11 Years)’ 때문에 이곳을 찾았다. 넓은 어깨만큼이나 큰 웃음을 가진 마이클 C 플레이스가 우리를 전시 현장으로 안내했다. 시리즈로 구성된 34개의 포스터가 잔인할 만큼 이 넓은 공간의 두 벽면을 덮고 있었다. 그는 3일 동안 면도를 하지 못해 까칠한 수염이 나 있었고 지난 밤의 특별 초대전 덕분에 숙취까지 있었지만 ‘기분 엄청 좋네요’라고 표정으로 말하는 듯했다.

“11년 전체를 기록하다니 좋은 걸요.” 초기에 제작된 포스터가 있는 쪽을 향해 콘크리트 바닥을 가로질러 가며 그가 말했다. “10년째에 하려고 했다가 그 당시 너무 바빠져서 ‘좋아, 11년째에 하자.’ 했어요. 쇼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작업을 해야 하는지 깨달았고 우리 모두 지금이 바로 그 적기라고 생각했거든요. 작품을 기념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런 어려운 시기에 11년이나 계속 일을 해왔다는 성과를 자축하는 일이기도 하죠.”

이번 쇼의 제목은 빌드가 얼마나 어려운 시기를 겪었는지를 잘 보여준다고 그가 설명했다. 생각해보면 빌드가 일을 해 온 절반의 시간 동안 영국 경제는 침체기였다. 항상 장밋빛으로 밝지 않았던 덕분에 현재의 성공을 더 감동적으로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번 쇼는 또한 빌드가 처음으로 여는 제대로 된 전시회이자 2012 런던 디자인 페스티벌 카탈로그에 실리는 몇 안 되는 그래픽 디자인 행사로 선정되는 영광까지 얻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번 쇼가 의미 있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이 모든 작품들을 웹사이트의 작은 이미지가 아닌 벽에 걸린 프린트로 직접 가까이에서 볼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모든 포스터를 실제로 보게 되다니 기뻐요. 작품의 퀄리티와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를 느낄 수 있네요.’라고 하더군요. 책 디자인이 요즘에는 거의 썸네일(Thumbnail) 디자인처럼 여겨지게 되어서 사실 좀 서글퍼요. 아마존에서 보이는 썸네일을 디자인 하는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플레이스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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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트 카드에서 영감을 얻은 이 ‘낫 포 커머셜 유즈(Not For Commercial Use) 포스터는 A1용지에 인쇄 되었다. 9색의 잉크와 호일 블록을 포함
 

이번 전시회의 포스터들은 연대 순으로 배열되어 있으며 한 해 당 적어도 하나의 포스터가 전시된다. 빌드는 2001년 플레이스와 그의 아내 니키가 일 년간의 여행으로 돌아오고 나서 설립되었다. 그 전에 플레이스는 영국 셰필드의 더 디자이너스 리퍼블릭(The Designers Republic)에서 일했었는데 그는 자신이 예전에 작업했던 포스터들에는 DR의 느낌이 약간 묻어났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각각의 포스터는 빌드가 지난 11년간 이뤄온 여정의 길을 잘 보여주는 듯했다. 플레이스는 이 기간 동안 자신만의 디자인을 실험하고 발전시켜 왔다. 대부분의 포스터들은 빌드 스스로 만들거나 합작한 작품이었기 때문에 2005년처럼 빌드가 잠시 상업 광고로 바빴던 해에는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포스터가 만들어졌다.

“오랫동안 보지 못한 포스터들을 다시 보니 기분이 이상하지만 지금까지는 반응이 굉장합니다. 어젯밤에는 ‘전체적인 맥락을 볼 수 있네요’라고 말해준 사람도 몇 명 있었는데 아주 좋았어요. 이 포스터들은 확실히 ‘디자이너스 리퍼블릭스’스럽네요.” 플레이스가 초창기의 작품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점점 저만의 스타일로 변해가죠. 지금 제 작품들은 훨씬 더 심플해요. 저쪽 포스터처럼요.” 그는 팔을 크게 휘저으며 낫 포 커머셜 유즈(Not For Commercial Use) 시리즈 포스터인 비율(Scale) 시리즈와 활자를 기본으로 한 무질서(Disorder) 시리즈 작품들로 향했다.

플레이스도 인정하듯, 그의 초창기 작품들은 마치 그가 다양한 요소들을 포스터에 담으려고 했던 것처럼 보인다. 글자는 그래픽 기호와 충돌하고 도형은 서로 겹쳐있거나 여러 조각으로 잘려 맞물려있다. 선은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며 때로는 대칭을 이루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이런 혼란 속에서 질서가 생기고 작품의 컨셉은 더 확실하고 기발해지는 것이다. ‘디자이너들은 다 재수없어(All Designers Are Wankers)’ 시리즈는 처음에는 아름다운 여성의 얼굴을 담은 포스터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포스터 한 장이 한 글자를 표현하고 전체 시리즈가 한 문장을 이룬다. 2007년 처음 시작된 그의 비율(Scale) 포스터도 이 한 예이다. 탄소 원자와 1펜스 동전, 그리고 태양이 정확하게 같은 사이즈로 포스터에 담겨 있으며 그 아래에는 실제 사이즈와의 비율이 표시되어 있다. 두 가지 색상을 이용해 A1용지에 스크린 인쇄된 이 시리즈는 아주 간단하면서도 아름다우며, 전시회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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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욜(Scale)’시리즈 포스터들은 한 아이디어를 그 본질로 축소하는 것에 대한 마이클 C 플레이스의 관심을 잘 보여준다.

“축소의 아이디어, 그리고 간단한 형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아이디어가 이 모든 작품들에서 드러나요.” 플레이스의 설명이다. “나이가 들면서 취향이 바뀌기도 했어요. 점점 나이가 들면서 제 작품들도 함께 성장한다고 느낍니다. 2001년이었다면 비율 시리즈를 만들지 않았을 거에요. 제가 인간으로서 또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성장하는 과정과 비슷하거든요.”

오늘의 점심은 브릭 레인 근처 러프 트레이드 이스트(Rough Trade East) 레코드 샵 바로 옆의 카페에서 참치와 치즈 파니니가 될 것이다. “코리(Corey)는 더 소프라노(The Soprano)의 로고를 디자인 했어요.” 플레이스가 자신의 친구이자 이번 전시회를 위해 LA에서 방문한 프리랜서 디자이너 코리 홈즈(Corey Holms)를 소개했다. 또 브뤼셀에서 뷰로347(Bureau347)을 운영하고 있는 제롬 프랭크(Jerome Franck)를 소개하면서 “초기에 우리가 가장 먼저 한 일 중 하나가 그들의 아이덴티티 작업이었죠.” 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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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스와 홈즈, 그리고 프랭크는 그 전날 밤 특별 초대전의 에일과 사과주, 그 후에 먹었던 커리, 그리고 오늘 이어진 숙취에 관해 대화를 나눴다. 그런데 갑자기 플레이스가 파니니를 먹다 말고는 문밖으로 뛰쳐나갔다. 어젯밤의 커리 때문이 아니었다. 이번 전시회를 위해 플레이스는 11개의 아이덴티티가 담긴 배지를 디자인 했는데 모두 이 배지를 달게 하기 위해 갤러리로 돌아가 배지를 가져온 것이다.

식사가 끝난 후 플레이스는 많은 사람들 사이를 뚫고 지나가며 우리를 리버풀 스트릿(Liverpool Station)역 쪽으로 안내했다. 큰 체구로 사람들 사이로 길을 내며 지나가는 그를 따라잡기가 쉽지 않았다. 홈즈는 숨을 헐떡였고 유로스타를 타고 브뤼쉘로 돌아가야 하는 프랭크는 역 한가운데에서 플레이스와 큰 포옹을 했다. 우리가 타야 할 기차는 빌드의 스튜디오가 있는 월섬스토(Walthamstow)로 향하게 될 것이다.

월섬스토는 햇빛이 비춰도 뭔가 음침한 느낌이 나는 곳이었지만 스튜디오 만큼은 굉장했다. 금빛이 나는 나무 바닥과 하늘을 향해 낸 창문, 그리고 화이트의 벽과 가구로 현대적인 느낌이었고 매우 잘 정돈 되어있었다. 플레이스의 아내와 비즈니스 파트너인 닉도 스튜디오에 있었는데 그의 아내는 특별 초대전 이후 센트럴 런던에 머물렀던 것이 잘한 선택이었다고 전했다. 어젯밤의 전시회 오프닝이 큰 성공이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암시하면서 말이다.

 

*기사 전문은 CA Collection 07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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