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디오에서 피터 빌락

 

헤이그 중심에 위치한 자신의 집에서 피터 빌락은 매일 20분 동안 자전거를 타고 숲이 울창한 공원을 지나 자신의 일터가 있는 스케브닝겐에 도착한다. 이 시간은 그가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데 그의 말처럼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으면 좋은 아이디어를 얻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의 스튜디오는 얀 뒤케Jan Duiker의 예전 학교 건물 1층에 위치해 있다. 네덜란드 모더니즘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전부 직사각형, 유리, 콘크리트와 메탈로 이루어져 있으며 1930년대 처음 건축되었을 때와 같은 모습으로 보존되고 복원되어 있다. 심지어 구 모양의 실내 조명도 예전 모습 그대로이고 특정한 전구를 사용해야만 한다. 하지만 산업 메탈 선반이 있는 빌락의 스튜디오에는 모두 불이 꺼져 있었다.

“이곳은 바다와 무척 가까워요. 항구는 2분이면 갈 수 있고 해변도 6분 내에 도착할 수 있거든요. 여름에는 항상 가방에 수영복을 갖고 다니는데 언제 해변에 가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에요. 굉장히 좋죠.”

헤이그는 빌락과 같은 전문 타이포그래퍼들을 찾기에 안성맞춤인 장소다. 빌락이 활자와 미디어 석사프로그램 전공자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고 있는 왕립 예술 아카데미가 있는 곳일 뿐만 아니라 매우 세계적인 도시이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의 수도는 암스테르담이지만 헤이그에는 네덜란드 국회와 각국 대사관, UN과 UN국제사법재판소가 있다. 길거리에서는 네덜란드 사람뿐만 아니라 프랑스, 스페인, 한국 등 다양한 국가에서 온 사람들을 모두 만날 수 있다. 빌락도 구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자라난 슬로바키아 사람이다. 프랑스와 미국에서도 살았고 인도를 오랫동안 여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헤이그가 자신의 집처럼 편안하게 느껴진다고 말한다.

“전세계에서 온 친구들이 있어서 무척 살기 좋은 곳이에요. 여행을 갈 때면 저는 항상 다시 헤이그로 돌아오기를 고대하죠. 파리나 런던 같은 곳에 사는 많은 사람들은 무언가 놓치고 있다는 느낌을 받곤 하죠. 뭔가 균형이 맞지 않는 부분이 있거든요. 헤이그는 제게 딱 맞는 규모의 도시에요. 조급함을 느끼지 않거든요.”

헤이그는 매우 점잖게 움직인다. 빌락은 밝고 소박한 데코의 근처 카페에서 점심을 먹는 것을 즐긴다. 인터뷰 시작 전 비프 샐러드와 오믈렛을 먹으면서 우리는 그와 어떻게 최고의 초밥 요리사가 되는지에서부터 세계에서 가장 큰 아이스하키 선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대화를 나눴다. 빌락은 잡지 런칭을 위해 새로운 폰트를 디자인하거나 모던 댄스 프로덕션을 구상하고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해오고 있지만 점심을 먹을 때 일하는 것은 그의 스타일이 아니다. 하루 일과를 잠시 중단하고 식사를 즐기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그가 독립적인 스튜디오를 차린 이유다. 그는 27살에 스튜디오 덤바Studio Dumbar를 떠났고 그 이후 계속 혼자 일해오고 있다. 빌락 뿐만 아니라 다른 타이포그래퍼가 만든 활자를 주조하는 타이포테크Typotheque를 세우는 일도 스스로 했다. 그는 인도의 다양한 언어를 위한 활자를 만들 목적으로 사티아 라지푸로히트Satya Raipurohit와 함께 2009년 인디아 타이프 컴파니India Type Company를 만들었다. 또한 디자인 스튜디오 일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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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활자가 다 유행하는 것은 아니다.

 

디자이너로서 그가 성취한 독립적인 활동영역은 부러움을 살만 하다. 빌락은 보통 전시회에 초대를 받아 공헌하거나 강연을 하기도 하고 실험적이거나 개념적인 작품을 만들기도 한다. “디자이너가 어려운 직업인 이유는 자기가 하고 싶어 하는 작품을 누군가 의뢰 해주기를 바라기 때문이죠. 여러 회사의 로고, 또는 책과 스탬프 등의 로고 디자인을 해줄 것을 의뢰 받거든요. 어느 순간 저는 제 자신의 작품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죠. 현재는 스튜디오가 하고 있는 일의 대부분이 제가 직접 시작한 일입니다. 잡지 일만 해도 제가 정말 하고 싶어서 하고 있는 것이지 의뢰 받아서 하는 것이 아니거든요.”

빌락이 말하는 잡지는 「웍스 댓 웍크Works That Work」인데 현재 많은 시간을 들여 공들이고 있는 프로젝트다. 큰 열정을 갖고 진행하는 이 프로젝트에 그는 상당한 액수의 자비와 온라인에서 크라우드 소싱을 통해 모금한 기금도 투자했다 일년에 두 번 지면과 디지털 상으로 발행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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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락이 런칭한 디자인 잡지 「웍스 댓 웍크」의 프로토타입 버전

 

웍스 댓 웍크 」는 빌락이 생각하는 디자인 잡지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디자인 잡지를 종종 다양한 색의 아름다운 작품들, 그리고 큐레이션을 합쳐놓은 것으로 생각하곤 해요. 그것도 괜찮지만 다른 형식의 디자인 매거진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디자이너로서 저는 여러 다른 주제를 다루는 작업을 하는데 「웍스 댓 웍크」에는 스토리텔링적인 요소가 있어요. 다른 잡지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부분인데 실제로 독자를 끌어들일 만한 스토리가 있는 거죠. 저녁 식사를 하면서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은 그런 종류의 스토리이고 마치 우리가 방금 점심을 먹으면서 이야기한 것과 비슷한 거죠.”

디자이너가 어려운 직업인 이유는 자기가 하고 싶어 하는 작품을 누군가 의뢰 해주기를 바라기 때문이죠. 여러 회사의 로고, 또는 책과 스탬프 등의 로고 디자인을 해줄 것을 의뢰 받거든요. 어느 순간 저는 제 자신의 작품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빌락은 그의 활자체 디자이너로 잘 알려져 있지만 「웍스 댓 웍크」는 활자 디자인에 관한 잡지가 아니다. 야심차게 준비한 첫 번째 호에 실리게 될 내용은 다양하다. 시스티나 성당에서 교황이 예술가들에게 한 말을 바탕으로 한 미(美)에 관한 기사가 있는가 하면 아프가니스탄의 미군들이 사용했던 그림 문자 번역 가이드에 관한 기사와 작은 파리 한 마리를 새겨 물 내리는 85센트를 절약하고 있는 암스테르담의 변기에 대한 기사도 있다.

빌락은 한 사진을 들어 보였는데 사진 속에는 한 여성이 테이블 위에 누워 차가운 고기 덩어리를 몸 전체에 걸치고 있었다. “그런 종류의 잡지는 아니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빌락이 말한다. 빌락이 큰 관심을 갖고 있는 군대의 셰프에 관한 사진이다. “다큐멘터리 감독인 친구가 하나 있는데 그 친구가 군사 분쟁 지역의 몇몇 군대에서 주방장들을 인터뷰 했어요.” 그가 설명했다. “코소보에서 유고슬라비아 군대는 나토에 의해서 폭격을 맞았죠. 열을 감지할 수 있는 미사일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열이 필요 없는 차가운 음식으로 식단을 바꿔야 했어요. 한달 동안이나 말이에요! 이번 호에는 몇몇 놀라운 이야기가 실릴 예정인데 준비 없이 즉석에서 음식을 만드는 것에 관한 기사도 있고 바로 이런 사진도 포함되어 있어요.” 그가 인간 고기 부페 사진을 다시 스튜디오 벽에 걸으면서 말했다.

디자인뿐만 아니라 포토그래피도 「웍스 댓 웍크」의 중요한 부분이 될 것이다. 하지만 빌락이 직접 페이지를 배치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가르쳤던 학생 중 한 명이 잡지 디자이너인데 덕분에 빌락은 이 일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대신 전체 과정을 감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디자인은 그에게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지만 너무 많은 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밤늦게까지 페이지를 배치하느라 관심을 충분하게 기울이지 못할 것 같았다. 이런 종류의 잡지 디자인은 그러기에는 너무 중요하다고 그가 덧붙였다.

빌락은 「아이Eye」, 「프린트Print」, 「에미그레Émigré」에서 글을 쓴 적이 있었기 때문에 잡지 프로덕션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2000년에 그는 타이포그래피 잡지인 「닷 닷 닷DOT DOT DOT」의 공동 크리에이터로 일했는데 이 잡지는 10년 동안 발간되었다. 「닷 닷 닷」은 자금 지원의 혜택도 받았고 복잡한 방식으로 활자에 대해 논하는 기사를 싣기도 했다. 그는 지금 와서 뒤돌아보면 예술가인 척 하는 언어 사용에 대해 완전히 만족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비싼 와인과 비슷해요. 좋아하고 싶지만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모르는 것처럼요. 비싼 돈을 주고 샀으니 별로라고 말하기는 싫은 거에요. 그런 감정을 지우고 싶어요.”

웍스 댓 웍크」는 크라우드소싱을 위해 참여하는 후원자들과 빌락의 자금으로 만들어진다. 편집부분에 있어서는 독특한 스토리와 자연스러운 언어로 아이디어를 분명하게 전달할 것이다. 그리고 그는 중간 단계를 없애고 독자가 직접 관여할 수 있는 유통방식을 찾고 있다. 이런 부분들이 아직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로 남아있다.

 

지면을 직접 배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빌락은 「웍스 댓 웍크」의 로고를 디자인했고 잡지에 쓰일 활자도 만들었다. “처음 시작했을 때 이 잡지의 출판을 위해 우리가 사용할 언어의 분위기에 꼭 맞는 새로운 폰트를 만들면 좋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잡지를 구상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이 잡지를 위해 개발하기 시작한 꽤 진지한 스타일의 폰트가 있어요. 연속적인 텍스트 폰트인데 가장 작은 사이즈가 9로 만들어 졌고 진지한 느낌을 내죠. 거창한 건 아니에요.

새로운 폰트 이름은 용암을 뜻하는 라바Lava이지만 그는 이를 설명하면서 전혀 그런 느낌은 아니라는 듯 손사래를 쳤다. 폰트의 이름이 꼭 그 폰트가 어떤지, 무엇을 표현하는지와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니다. “아이 이름을 짓는 것과 폰트 이름을 짓는 것을 비교해보면 매우 비슷해요. 아기를 갖게 되면 태어날 때까지 9개월 간 아기 이름을 생각하잖아요. 폰트는 보통 더 오래 걸리죠. 저는 폰트 작업은 보통 일년에서 이년에 걸쳐 하는데 이름은 마지막까지 고민하곤 해요.” 그의 설명이다. 하지만 그는 폰트 이름을 짓기 위해 부모들이 하는 것처럼 의자에 앉아 아기 이름이나 성인들의 이름이 담긴 책을 뒤적이지는 않는다. 그는 오래 전에 고민거리를 덜어주고자 알파벳 순서로 폰트 이름을 짓기로 결정했다. 유레카(Eureka)는 그가 만든 첫 번째 진짜 폰트였다. 유레카 전 폰트들은 실험 작품으로서 폰트 만드는 과정을 배우기 위한 것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그 뒤로 프레다Freda와 그레타Greta가 탄생했는데 매우 잘 만들어진 폰트로서 몇몇의 다른 스타일로 여러 가지 스타일의 세리프와 산세리프체로 변형되기도 했다.

 

H에서는 히스토리History가 만들어졌는데 이 때부터 그의 카탈로그가 좀 더 활기차고 화려해졌다. 히스토리는 로마 시대에 돌에 새겨진 기본적인 라틴 대문자를 바탕으로 한 폰트다. 그런 다음 20개의 다른 알파벳을 각각 다른 시대의 장식물로 꾸며서 활자의 역사를 돌아보게끔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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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락은 자신이 만든 모든 활자를 수 백 개의 언어로 만들어 꼼꼼히 테스트 한다.

 

2009년 피터 빌락은 인디아 타이프 주조소 ITF를 사티아 라지피로히트Satya Raipirohit와 공동 창업했다. 인도에는 약 400여 개의 언어와 11가지 종류의 문자가 있다. “영어는 26개의 알파벳과 대문자가 필요해요. 힌디어는 글리프가 800개나 필요합니다. 이런 글리프들은 알파벳이 아니라 음절인데 음성과 음절 시스템의 조합이에요. 그래서 글자 몇 개를 쳐서 글리프를 만드는 거죠.” 빌락의 설명이다

인도 언어를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매우 적은 수의 디지털 폰트가 만들어졌다. 그나마 이런 폰트들도 소프트웨어 회사들이 소유한 전용 폰트라서 유니코드와 맞지 않는 경우가 많고 따라서 국제 규격의 이메일이나 워드 프로세싱, 디자인 소프트웨어 등에 사용될 수 없다. 빌락은 ITF와 함께 일했던 인도 방갈로르 지역 신문인 프라자바니를 예로 들었다. 이 신문은 약 60여 개의 폰트를 가진 카나다Kannada라는 서체 문자를 이용한다. 이 60개의 폰트 중 오직 10퍼센트만이 유니코드를 따르고 있으며 나머지 중 6-7개는 전시용 폰트다. 결과적으로 이 도시의 10여 개의 신문이 모두 같은 폰트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프라자바니 신문을 위한 폰트를 만들었어요. 꽤 큰 공헌을 한 거죠. 갑자기 저널리즘에 기울이는 노력만큼 신문 디자인에도 신경을 쓰게 됐고 결과적으로 시각적인 표현이 가능해졌으니까요. 대변하는 목소리가 바뀐 것이나 다름없어요.” 빌락이 설명했다.

빌락은 현재 ITF에서 한 발짝 뒤로 물러나서 「웍스 댓 워크에 총력을 다하는 중이다. ITF에는 현재 아메다바드 (Ahmedabad) 의 주조 스튜디오에서 여러 인도 활자 디자이너가 일하고 있으며 빌락은 ITF가 좋은 상태로 유지되어 기쁘다고 전했다.

모두 같은 골격과 메트릭스로 되어있기 때문에 폰트 내에서는 서로간의 호환이 가능하고 겹쳐질 수도 있다. 따라서 멕시코68의 로고같은 연속적인 글자와 비트맵 방식의 서체, 윤곽만 그려진 글자 등 여러 방식으로 해체된 글자를 합쳐 헤드라인을 만들 수 있다. 원한다면 바로크 스타일의 세리프를 도트 매트릭스 문자에 덧붙일 수도 있다.

“대부분의 폰트가 역사의 한 순간에 기반하고 있는 반면 히스토리 폰트는 라틴 글자의 모든 역사를 동시에 보여주죠.” 빌락의 설명이다. “르네상스 기간 동안 항상 적용되던 종류의 명암이나 세리프체가 있었어요. 바로크 시대에는 두께의 차이가 강조되었죠. 그 이후에는 처음으로 기계적인 산세리프 활자가 도입 되었지만 명암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어요. 세리프체가 어떻게 발전했는지 그 다양한 기본형태나 장식 등을 보면 20세기 유럽에서 타이포그래피의 역사를 보는 거나 다름없죠. 그래서 그것들을 함께 묶어 놓으면 16세기, 17세기, 18세기, 19세기, 그리고 20세기 활자와 비슷하게 만들 수 있어요.”

이 폰트를 활용하기 위해서 디자이너들은 ‘히스토리 믹서’라는 소프트웨어를 쓸 수 있는데 각각의 글자의 다른 스타일을 다른 글자에 덧입힐 수 있다. 히스토리는 타이포테크에서 가장 잘 팔리는 폰트 중 하나다. 학생들의 파티 홍보용에서부터 뉴욕 구겐하임의 ‘카오스와 고전주의’ 전시회의 아이덴티티에까지 다양하게 쓰였다. 빌락은 과거에 개념적 타이포그래피라는 것은 없다고 주장했다. 글자는 기능이 있고 활자체는 글자의 그 기능에 맞춰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순수한 아이디어만을 표현하는 활자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가능하다면 아마 히스토리체가 이런 개념적 타이포그래피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예가 될 것이다. 순수한 아름다움과 추함을 같은 폰트 내에서 표현해내기 위해 만들어진 칼로프체도 그렇다. 빌락에게 히스토리는 거의 예술 작품과 같은데 거의 10년 째 계속해서 작업해오고 있다. 그 사이사이에 그를 유명하게 해준 페드라Fedra나 어마Irma같은 훌륭한 폰트 뿐 아니라 줄리안Julien 같은 소규모의 재미있는 활자도 만들어 냈다. 다른 디자인 영역과는 다르게 타이포그래피는 천천히 타오르고 시간이 지나면서 성공 여부가 더욱 명확해진다. 현재 디자이너들은 50-60년, 100년, 심지어는 200년 전에 만들어진 폰트를 사용하고 있다. 빌락은 어떻게 이런 폰트들이 이렇게 오랫동안 사용되면서 미학적으로도 의미가 있을 수 있는지 궁금해하면서도 동시에 그가 만들어낸 폰트들이 이렇게 장수하고 있는 것에 만족하고 있다.

여러 신흥 개발도상국이 새로 부상하면서 빌락은 타이포그래퍼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주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가 공동 설립한 인디아 타이프 컴퍼니India Type Company가 그 예이다. 인터내셔널리즘은 그가 내놓은 전반적인 디자인 전망 중 하나인데 헤이그 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나라에서 살거나 일한 경험은 그에게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그런 경험들이 확실히 제 안에 흔적을 남겼어요. 어떤 장소가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는 말하기 어렵지만 무언가를 할 때 여러 가지를 비교해 볼 수 있게 해줬고 꼭 한 가지가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죠. 한 문제에 대해서 항상 두 가지, 또는 여러 가지 다른 관점을 유지할 수 있어요. 포스터를 만들 때 최선을 다했다고 해서 그것이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은 아니거든요. 다르게 접근할 수 있으니까요.” 빌락의 설명이다.

“여러 언어에 둘러싸여서 자란 것, 특히 체코슬로바키아에서 태어나서 여러 정권을 아래에 살면서 사람들을 조종하기가 얼마나 쉬운지를 보고 자란 것과 연관이 있어요. 공산주의 시대에 사람들은 공식적인 뉴스와 비공식적인 뉴스를 구별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이런 것들은 곧 잊혀지나 봐요. 미국이든 영국이든 또는 여기 헤이그든 사람들은 뉴스가 항상 한 방향으로만 보도된다고 믿기 시작하거든요. 서로 연관성이 있지만 조금 복잡하죠. 같은 뉴스라도 알 자지라나 폭스 뉴스를 통해서는 완전히 다른 뉴스인 것처럼 방송 될 거에요.”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빌락은 그래픽 디자인에서나 타이포그래피에서 훌륭한 작품들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모든 것을 새로운 시각에서 보게 해주는 것이다. 「웍스 댓 웍크」가 이런 좋은 예인데 단순히 아티스트의 입맛에만 맞는 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디자인 잡지를 재발견 하기 위한 책이다. 그가 네덜란드 댄스 씨어터 NDT와 함께 작업한 작품 또한 그렇다.

빌락이 파리에서 공부하던 당시 그와 그의 몇몇 친구들은 영화를 보러 갔다. 표는 매진이었지만 뒤늦게 NDT 댄스 프로덕션의 티켓을 구해서 공연 후반부를 관람했다. 그는 이것을 곧 잊어버렸는데 몇 년 뒤 헤이그에서 살게 되었을 때 NDT가 자신의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빌락은 공연을 보기로 결심했고 곧 NDT의 무용수들을 만나게 되었고 안무와 어떻게 댄스 프로덕션이 무대 위에 올려지는지에 대해 알게 된 그는 NDT에 공헌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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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디 타입Body Type은 빌락의 타이포그래피와 댄스에 대한 관심을 합쳐놓은 폰트로 레귤러와 볼드 두 가지가 있다.

 

“무대 위에서 본 무용수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게 됐는데 그들이 춤출 때 내가 무엇을 보았는지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를 얘기해 줬죠. 그리고는 내가 보는 것이 무용수들이 보는 것과는 매우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들은 무대에 있기 때문에 춤이 어떤지, 각각의 다른 요소가 함께 어떻게 작용하는지, 음악이 어떻게 그들의 움직임에 색을 입히는지, 그들이 무대 디자인이 관객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전혀 몰라요. 춤에 몰입하고 있고 엄청나게 집중하기 때문에 마치 운동선수가 각자 할 일을 하는 것과 같은 거죠.”

그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각각 다른 부분들을 함께 조합해서 한 작품으로 만들 수 있을까요?’하고 제안했어요. 지금 저는 안무가 루카스 티무락Lukas Timulak과 함께 일해요 제 역할은 다른 요소들을 조합해서 그 모든 것들을 한꺼번에 연결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거에요. 저는 댄서도 아니고 안무가도 아니에요. 제가 하는 일은 디자인이죠. 무용 작품을 디자인 하는 일에 정해진 단어가 없어서 그 이외에는 뭐라고 불러야 하는지 모르겠네요. 보통 제 이름을 프로그램에 넣을 때 ‘컨셉트’ 같은 단어를 쓰더군요.”

 

*기사 전문은 CA Collection 08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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