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 전체뿐만 아니라 디자인과 예술계에 부는 인문학 열풍은 수년째 공허한 바람 소리만 내고 있다. 인문학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는 끊이지 않지만, 정작 어떠한 이유로 인문학에 집중해야 하는지, 또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고 적용할 수 있는지에 관한 구체적인 답은 찾아보기 힘들다. 수많은 작가들은 좋은 디자인의 근간이 인문학에서 출발한다는 주장에 언뜻 동의하면서도 인문학의 정체가 무엇인지, 왜 필요한지, 또 어떻게 디자인으로 풀어낼 수 있는지를 물으면 명쾌한 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71회 CA 컨퍼런스에서는 인문학에 관한 불안정한 현실을 다루고자 현 디자인 연구소의 최경원 대표가 연단에 섰다. ‘왜 지금 한국에서 디자인을 인문학적으로 보아야 하는가?’라는 주제로 진행된 본 컨퍼런스는 국내 디자인계의 현주소와 좋은 디자인을 만드는 인문학적 접근에 관한 이야기로 구성되었다.
 
 
71회 CA 컨퍼런스
디자인 인문학 개론


일시: 2016년 10월 22일
장소: 역삼1동 문화센터 강남시어터
연사: 최경원
 
 
 
 
기능주의에서 벗어나라
최경원은 국내 디자인 산업, 특히 디자인 교육 분야의 문제점으로 기능주의를 꼽는다. “우리나라에서 디자인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좋아하는 디자이너가 누구인지 물어도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경우가 심심찮게 보입니다. 이는 디자인이 노동, 즉, 생산 활동이라 교육받기 때문이죠. 이 현상은 생산 여부가 가장 큰 문제라 여겼던 과거의 잘못된 교육이 답습되어 온 결과예요.” 최경원이 말한다. 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디자인은 자연스럽게 기능주의를 따를 수밖에 없는데, 한국의 많은 디자인 교육 기관은 아직도 기능주의를 앞세운 바우하우스식 교육에 머물러있다고 그는 지적한다. “바우하우스식 교육이 잘못된 교육이라는 뜻이 아니라, 1차 세계 대전 직후 전쟁으로 황폐해진 국가를 일으키기 위해 생산을 강조한 바우하우스 설립의 특수한 정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비판 없이 그대로 차용하고 있다는 현실을 인지해야한다는 의미입니다. 지금은 독일에서조차도 기능주의를 디자인의 최우선으로 두고 있지 않으니까요.”
 
최경원은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앞서 아무런 근거나 이유 없이 철학자의 이름이나 디자인 이론을 줄줄 읊으며 단편적인 지식을 절대적인 원칙으로 내세우는 실수를 주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는 인문학에서 얻은 단편적인 지식을 교리로 삼고 종교화하는 실수를 범하는 사람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시대와 배경이 완전히 다른 이론을 우리나라 디자인에 대입하여 문제를 야기하는 것도 주의해야 합니다. 철학 이론을 달달 외우는 것과 실제로 철학을 하는 것이 다르듯, 이런 시도들은 기록만 남길 뿐 한국 디자인계의 발전에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없어요.” 최경원은 이러한 상황은 문제 해결은커녕 어떤 상관관계를 밝혀내지도 못한 채 악순환을 반복하게 하는 지름길이라고 설명한다. 국내 디자인계에 등장한 인문학에 대한 갈증이 해소되지 못한 채 계속 부유하는 것은 이와 같은 악순환 때문이라는 것이다.
 
 
대중을 읽어라
최경원은 대중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또한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중은 이제 그들이 사는 이유와 방식, 가치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살아갑니다. 디자이너들 또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특정한 이데올로기에 따라 생활하고 있고요. 디자이너들이 그들의 삶을 개념화하고 객관화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려면, 대중이 보편적 인간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려하는 인문학적 태도를 갖춰야 하는 거죠.” 최경원이 설명한다. 그는 대중을 피주체적 존재인 소비자로 한정짓는 것을 지양하고 능동적 사유 체계를 가진 인간으로 보아야 한다고 연신 강조한다.
 
세계 디자인 시장에서 한국이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나라로 떠오르고 있는 반면, 정작 우리나라 디자이너들은 이 흐름에서 제외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미 외국의 많은 명품 기업은 한국을 중요한 시장으로 보고 적극적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대중의 소비 수준이 높아졌다는 의미인데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세계 디자인 시장의 흐름에서 정작 한국 디자이너들의 이름은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자신의 무대를 세계로 넓히고 싶은 디자이너라면 대중, 즉 인간 자체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는 뜻이죠.” 최경원이 설명한다.
 
 
인문학은 체계를 가진 학문이다
최경원은 인문학이란 과학, 수학, 사회학, 철학, 예술, 미술 등 보편적인 인간을 연구하며 나온 학문을 뜻하며 디자인 또한 이미 인문학의 소산이라고 말한다. 그는 인문학에 접근하는 데 있어 잊지 말아야 할 것으로, 인문학은 병렬 구조가 아닌 뚜렷한 체계를 가진 학문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인문학을 나무로 비유했을 때 과학은 뿌리의 역할을 하며 철학은 몸통이 됩니다. 그 다음 사회학, 수학 등이 가지가 되고 가지 끝에 달린 열매가 바로 디자인을 포함하는 예술입니다. 세상을 보는 눈을 제시하는 과학이 우리가 사는 우주를 바라보는 관점을 바꿔버리면 철학적 견해들이 바뀌게 되고, 철학에서 파생된 학문들에도 변화가 생기는데요. 디자인과 예술 분야가 변화에 있어서 더딘 움직임을 보이는 이유는 바로 인문학의 체계 중 가장 마지막 단계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주관을 파악하라
우주관이란 말 그대로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탐구하고 이해하는 과정에 수반되는 생각과 방법들을 말한다. “동양인과 서양인의 우주관은 굉장히 다른데요. 서양 사람들은 세계를 볼 때 한 가지 요소도 쪼개고 또 쪼개면서 입자를 기하학적으로 전환해 수학적으로 풀어내려는 성향을 가진 반면, 동양 사람들은 수많은 요소가 한데 뭉쳐 집단을 이루고 이러한 집단이 큰 흐름이 되어 세계를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더 쉽게 설명하면, 서양에서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저마다 개인적 가치를 지닌 존재라는 사실을 규명하는데 집중하지만, 상호 작용을 중요시하는 동양에서는 한 인간을 사회 안에서 교류하고 작용하면서 발전해나가는 존재로 본다는 거죠.” 그는 우주관과 디자인이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고 덧붙인다. “우리는 모두 자신이 속한 사회의 우주관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시대에 도움이 되고 의미를 가진 디자인을 하고 싶다면 자신이 어떤 우주관에 근거하고 있는지를 살피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최경원이 강조한다.
 
 

글 — 민정현

 
 
 
최경원
DESIGNHYUN.COM

현 디자인 연구소 대표

한국 문화를 디자인적으로 재해석하는 현 디자인 연구소와 홋컬렉션의 대표를 맡고 있으며, 서울대학교, 연세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각종 교육 단체, 기업, 기관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
 
 
 
 
 
 
 
 
 
 
 
이 기사의 전문은 ‘CA 2016년 12월호 : 2016 영국 최고의 스튜디오 30′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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