썸원의 공동설립자인 데이비드 로, 사이먼 맨칩 그리고 게리 홀트가 앉아서 대화하고 있다.

 

런던 동부 썸원이 자리잡고 있는 곳은 그 주변과 비교해보면 다소 절제된 느낌을 준다. 쇼디치 하이스트리트 기차역에서 내리면 위압적인 8층의 티 빌딩Tea Building과 마주하게 된다. 미디어 기업, 유통회사, 패션 브랜드, 예술가, 디자이너들이 모여 있는 일종의 창조적 허브인 곳이다. 그 건물의 모퉁이를 돌면 그레이트 이스턴 스트리트Great Eastern Street를 굽어보는 곳에 재활용된 한 쌍의 주빌레 선(Jubilee line) 열차 객차가 빌리지 언더그라운드Village Underground 예술지구의 스튜디오 공간 일부를 형성하고 있다. 디자이너, 예술가, 작가, 영화제작자, 음악가, DJ들의 보금자리라 할 수 있다. 그 길 위로 조금만 걸어 올라가면 이 도시에서 가장 소문난 정열적인 장소 즉 「바이스Vice」 잡지사의 디 올드 블루 라스트The Old Blue Last 건물이 교차로 옆에 우뚝 서있다. 300년 역사를 이어온 맥주 집이 보이고 한때는 셰익스피어가 단골로 드나들던 윤락가이기도 했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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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명의 직원들이 일하고 있는 런던 동부의 썸원 스튜디오. 썸원이 창립 7주년을 자축하기 위해 커다란 첫잔에 묶어놓은 호일 풍선이 일하는 직원들 머리 위에 둥실 떠 있다.

 

레오나르 거리로 방향을 잡으면 런던 특유의 낡은 노란색과 갈색 벽돌길이 불분명하게 이어지고 여기서 예리한 보행자라면 빛 바랜 67호 빨간색 문에 어울리지 않는 글씨로 ‘누군가Someone 살고 있다’고 적힌 간판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평범하지 않는 문화를 보여주고 있다.” 썸원의 공동설립자 사이먼 맨칩이 인정한다. 안경을 낀 마력의 사나이로서 그는 스튜디오에서 마시는 커피에 깐깐하게 굴듯 고객들을 향해서도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명하는 유능하고 활동적인 웅변가다. “전통적인 디자인 스튜디오와는 다르다. 우리는 관습을 따르길 거부하는 사람들을 고용하는 편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의 책임감을 부여함으로써 아주 빠른 속도로 성장하게끔 만든다. 우리 스튜디오에서는 인턴조차도 종이를 자르면서 시간을 허비하는 경우란 없다. 그들도 유명 고객을 상대해야 하고 스튜디오 안에서 가장 도전적인 아이디어를 낼 것을 요구 받곤 한다.”

 

바닥에서 천장까지의 통 유리창들, 벽돌과 브러싱된 금속의 벽들, 낮게 걸쳐진 들보가 특징인 이 스튜디오는 고객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일하는 직원들 사이에서도 만족감이 높다. “처음 문을 연 뒤로 단 세 명의 디자이너만이 스튜디오를 그만두고 나갔다.” 공동설립자인 데이비드 로가 말한다. “그들 중 두 명은 현재 각자 자신의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는 그 어떤 스튜디오보다도 디자이너들을 즐겁게 하기 위한 비용을 아끼지 않는다. 이는 우리 회계사가 늘 지적하는 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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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원은 모바일 커머스 기업 위브를 위해 위브가 제공하는 서비스들을 인상적으로 시각화시킨 아이덴티티를 개발했다.

 

“우리가 받은 최고의 칭찬 중 하나는…” 맨칩이 설명을 이어간다. “고객에게 다음과 같은 얘기를 들은 것이었다. ‘하루만이라도 여기서 일하고 싶군요. 좋은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비슷한 얘기를 우리는 많이 들어왔다. 사람들은 우리 스튜디오를 찾아와서 좋은 커피를 마시고 분위기를 만끽하며 진심으로 행복해한다.”

맨칩, 로 그리고 세 번째 공동설립자인 로라 후세이는 영국의 유명한 광고대행사 HHCL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 사이였다. 지금은 문을 닫은 HHCL은 탱고, 팟 누들, 마티니 등 잊을 수 없는 광고들로 2000년 광고전문 주간지「캠페인Campaign」으로부터 ‘90년대 최고의 광고회사’로 선정된 바 있다. 썸원의 태동이 바로 여기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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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가항공 패스트젯의 출시를 도운 썸원은 아프리카 회색 앵무새를 일약 스타로 만든 브랜딩 작업을 수행했다.

 

“나는 당시 HHCL의 파트너였다.” 맨칩이 말한다. “광고와 디자인을 결합하는 수많은 작업을 책임지고 진행했다. 그러면서 모든 사물에 대해 혁신적이고 흥미롭고 통찰력 있게 사고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 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것이 우리가 노원NoOne을 설립한 배경이다. 장차 우리가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는 뜻에서 그렇게 이름을 지었다.”

노원은 기네스Guinness, 유명 레스토랑, 항공사, 영국 예술위원회 등을 고객으로 두는 등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HHCL의 지배를 받고 있었던 만큼 맨칩, 로, 후세이는 확실한 독립을 원했다. 그들은 HHCL의 축복을 받으며 노원을 떠났고 바로 다음날 썸원을 설립했다. 함께 일하던 스태프와 고객의 명단도 그대로 가져왔다. “매우 특이한 경우였다.” 맨칩이 말한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전환이 이루어진 것이다.”

썸원 구성의 마지막 퍼즐은 게리 홀트였다. 국제적인 브랜딩 업체 램비-네언Lambie-Nairn에서 수석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했던 홀트는 맨칩, 로, 후세이처럼 이미 자기 회사를 차린 상황이었다. 이들 넷은 사무실 공간, 고객, 아이디어를 함께 나누기로 결정했다. “나와 사이먼이 계약을 맺었다.” 홀트가 말했다. “썸원의 창립 파티 때 우리는 좁은 발코니에서 솔직히 말하면 흠뻑 취한 채 세 가지 목표를 달성하자고 뜻을 모았다. 멋진 작품을 만들 것과 재미있게 일할 것, 이 두 가지를 계속 할 수 있도록 많은 돈을 벌 것을 말이다. 이 약속은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스튜디오 관계자들 모두 이 취지에 공감했다. 유명 고객부터 무료 프로젝트까지 모든 작업이 훌륭해야 한다. ‘좋다’, ‘괜찮다’, ‘적당하다’ 등은 썸원의 사전에 없는 말이라고 맨칩은 강조한다. “하찮은 작업을 용인한다면 당신은 더더욱 하찮은 작업을 하게 될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훌륭한 작업만 인정한다면 당신은 더더욱 훌륭한 작업을 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시작부터 매우 높은 기준을 세워두었다. 아무리 시간에 쫓기더라도 대충 하는 일은 아예 없애려고 우리는 매우 신경을 쓴다. 일을 급히 해치우면서 최고가 되길 기대하기보다는 밤을 새워 일함으로써 프로젝트의 우수성을 확실히 보장하는 쪽을 택한다. 자신의 기준을 한 번 어기기 시작하면 그렇게 낮아진 기준은 작품에도 그대로 드러나게 마련이다. 간단한 원리이다.”

높은 기준을 고수한다는 건 썸원으로 하여금 고객을 분별적으로 선택하게 하고 소비자 대중이 선호하는 접근 방식들을 따져보게 한다. “고객이 까다롭게 느껴지는 경우에는 당신이 반드시 작품을 팔아야 한다고 생각할 때다.” 맨칩이 설명하다. “고객이 당신의 작품을 반드시 사겠다고 하는 것이 제일 좋은 경우다. 우리는 대개 우리가 팔기보다는 고객이 사겠다고 하는 편이다.” 맨칩은 또한 디자인 스튜디오가 고객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돈독한 관계를 넘어 고객과 동일한 시각을 갖추는 것은 양쪽 모두에게 이득을 가져다 주는 마케팅 전략이다.

“우리 스튜디오의 특징 중 하나는 거의 심부름 센터에 준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추구하는 브랜드 가치라 할 수 있다. 또한 브랜딩 작업을 하는 디자인 스튜디오들 대부분이 우리처럼 스스로를 대상으로 브랜딩 작업을 하지 않는다.” 맨칩이 설명한다. “디자인 의뢰를 처음 하는 고객들의 경우 우리는 적극적으로 그들에게 다가간다. 매우 신중하게, 한 번에 한 걸음씩 다가가면서 우리가 제안하는 내용에 불편해하지 않도록 만든다. 디자인을 의뢰하는 것 즉 창조성을 산다는 것은 솔직히 겁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고객과의 돈독한 관계는 여러모로 유리한 작용을 한다. 고객이 소비자의 요구로 긴급 이사회를 열 경우 시각적 자료가 필요할 것이고 썸원은 그럴 때마다 기꺼이 고객을 도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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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원이 2012년 런던 올림픽 때 제작한 스포츠 픽토그램

 

고객을 대하는 이 같은 자세 덕분에 특별히 중요한 프로젝트를 따로 지목하기가 어렵다고 맨칩은 밝힌다. 그럼에도 그는 2012년 런던 올림픽을 위한 스포츠 픽토그램 디자인이 한 번에 500명의 고객을 상대한 비중 있는 작업이었다고 인정한다. 국제 고속열차 유로스타Eurostar의 리브랜딩도 마찬가지다. 썸원은 또한 국립 해양박물관, 그리니치 천문대, 퀸즈 하우스, 커티 삭, 피터 해리슨 천문관 같은 유명 관광 명소의 브랜딩을 통해 그리니치 자치구의 모습을 확 바꿔놓기도 했다.

썸원이 킹스크로스 지역에 처음 마련한 스튜디오에서 이런 고객들을 만나기 전에는 팀원들이 호텔 로비 같은 곳에서 무료 와이파이를 쓰면서 작업을 하곤 했다. 하지만 이제 쇼디치에 자리를 잡은 커다란 스튜디오에 썸원의 각종 프로젝트들은 책상과 벽을 뒤덮고 있다. 그리고 실내 자전거 거치대엔 하이브리드, 픽시 자전거들이 놓여있으며 35명까지 늘어난 팀원들은 온갖 소리를 내며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큰 찻잔과 접시에 금박으로 새긴 생일 축하 풍선이 이 스튜디오가 7번째 생일을 자축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맨칩은 스튜디오의 성공에는 두세 가지 핵심요인이 있다고 밝힌다. 썸원은 처음부터 이익을 많이 내지 않는 소박한 경영모델을 추구했다. 이는 경영컨설턴트들이 지금과 같은 경기침체 시기에 조직을 운영하는 현명한 방식으로 권장하는 것이라고 맨칩은 강조한다. 썸원은 몇몇 큰 고객들을 믿고 몸집을 불리는 것도 내키지 않아 한다. 많은 스튜디오들이 큰 프로젝트를 맡으면서 급하게 사업 확장에 나섰다가 고객이 줄었을 때 원상태로 쉽게 돌아가지 못하는 것을 본 뒤 깨달은 교훈이다.

“우리는 새로운 일을 얻으면 거기에 우리의 개성을 불어넣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한다. 그럼에도 늘 ‘맙소사, 우리의 특색을 제대로 못 살렸군‘이라고 아쉬워한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더라도 말이다. 나는 대부분의 디자인 스튜디오가 작업을 마치기까지 고작 대여섯 번의 통화만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 스튜디오는 금요일이면 모두를 불러 한 잔씩 한다. 일주일을 버텨온 것을 우리 스스로 감격해 하는 것이다.

나날이 번창하는 썸원의 또 다른 성공요인은 예술가들이 직접 스튜디오를 소유하고 운영한다는 점이다. 맨칩, 로, 홀트 그리고 후세이는 모두 디자이너로 훈련 받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회계사, 감독, 사업가와 전혀 다른 자세로 스튜디오를 운영한다. “나는 사람들이 왜 재정이 탄탄한 회사에서 위대한 작품이 나온다고 믿는지 결코 이해할 수가 없다.” 맨칩이 말한다. “훌륭한 작품은 창조성을 위주로 운영하는 회사에서 나온다. 우리 스튜디오는 100% 그렇게 운영된다. 사실 모든 예술적 활동과 비교할 때 사업은 오히려 아주 쉬운 부분이다. 우리는 예술가들이 소유하고 운영하는 스튜디오이기 때문에 그만큼 더 창조적인 결과를 내놓을 수 있다.”

여기에 비밀 공식 같은 건 없다고 설립자들은 입을 모은다. 오직 고객들에게 주도적으로 다가갈 뿐이고 그들은 이것이 자기들의 작업을 독특하다기보다는 ‘비범하게’ 만들어 준다고 생각한다.

썸원의 성공 요인은 또한 작업 분위기 자체보다 그 분위기를 조성하는 동기 부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있는 그대로의 우리 모습으로 디자인 기관들과 경쟁해서 이기고 싶다.” 로가 말한다. “우리 파트너들은 서로 다른 에이전시들을 거쳐왔음에도 조직적인 절차나 거대한 네트워크가 형성하는 동질성을 하나같이 혐오했다. 우리는 부티크나 아틀리에와 다르고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는 디자이너도 아니며 한 가지만 지나치게 고수하는 접근방식을 취하지도 않는다. 그런 건 우리의 모습이 아니다. 시끄럽고 에너지 넘치고 대중적이고 어수선하고 즐거워하는 게 우리 모습이다.”

“무엇이 변하였는가?” 홀트가 말한다. “자신 있게 말하지만 별로 없다. 우리의 몸집 정도랄까. 최고의 순간을 꼽으라고? 영원히 기억될 순간은 지금도 꾸준히 만들어지고 있다. 끝나지 않는 긴 번영의 시절이라 할 만 한다. 우리는 이를 즐기고 있고 그것이 작업에도 반영되길 원한다. 이런 시절이 오랫동안 지속됐으면 좋겠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예측 불가능성을 다룬다.” 맨칩이 말한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야말로 창조성의 본질이다. 만일 당신이 작업 말미에 어떤 결과를 만나게 될지 미리부터 안다면 그건 창조가 아니다. 그냥 확정된 일일 뿐이고 세금 환급과 다를 게 없다. 창조성은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절대적인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 창조성을 억누르지 않은 덕분에 지금의 할리우드도 존재하게 된 것이다. 물론 가끔씩 끔찍한 실패작들을 만나야 하지만 말이다.”

 

*기사 전문은 CA Collection 10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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