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뉴욕 카림 라시드에서 시니어 그래픽 디자이너로 근무하고 있는 박영하의 커리어는 화려하다. 3M, 현대자동차, 애경그룹, 본돔(Vondom) 등의 클라이언트들과 작업을 진행한 경력을 가지고 있고, 2011년부터는 미국 아틀란틱 뮤직 페스티벌(AMF)의 디자인 디렉터를 역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프리랜서로 활발한 개인작업과 전시 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레드 닷, 하우(HOW)국제디자인상, 어도비 디자인상, 월다(WOLDA) 등, 다수의 디자인 어워드에서 수상한 경력을 가지고 있으며, 다양한 전시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화려한 커리어를 자랑하는 그래픽 디자이너 박영하와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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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림 라시드 뉴욕 지사의 모습
 
 
 
작년 말에 카림 라시드 뉴욕이 20주년을 맞았죠?
네. 2013년은 카림 라시드가 뉴욕에 디자인 스튜디오를 오픈한 지 20주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지난 달(2013년 12월)에는 이를 축하하기 위한 기념 파티를 개최하였죠. 제가 이 파티를 위한 초대장을 디자인하였습니다. 비록 제가 카림 라시드에서 일하기 시작한 지는 3년 밖에 되지 않았지만, 강산이 두 번 변하고, 세 번째로 넘어가는 시점을 함께 한다는 점에서 괜히 뿌듯하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초대장을 디자인하면서 무언가 저도 카림 라시드에 일조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카림 라시드라고 하면 떠오르는 건 아무래도 핑크색과 플라스틱이겠죠. 초대장의 컨셉은 핑크 컬러와 플라스틱 느낌을 통해 구현한 ‘응3(응답하라 1993)’이었습니다.
 
 
최근에는 카림 라시드에서 어떤 작업을 맡아서 진행하셨나요?
이탈리아의 아트 소파 제작회사인 루카 보피(Luca Boffi)와 함께 출시한 카림 라시드 컬렉션을 디자인하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저의 색깔이 많이 묻어난 작업이어서 가장 애착이 가네요. 사실 소파에 프린팅한 두 가지 패턴은 전형적인 카림 라시드의 스타일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카림은 디자이너에게 전적으로 디자인을 맡기고 개개인의 크리에이티비티를 존중해주죠. 그래서 구상부터 프레젠테이션까지 개인이 혼자 프로젝트를 끝내는 경우가 많은데, 제 마음대로 만든 그 어떤 해괴하고 튀는 디자인이라도, 카림만 승인하면 그대로 제품으로 출시됩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래서 카림에 입사한 뒤로, 지금껏 은근히 저만의 스타일을 주입시켜왔죠. 카림 라시드를 통해 제 목소리를 내고 싶었던 것도 있지만, 사실 가장 큰 이유는 20년 동안 한결같았던 카림 라시드의 고정적인 스타일도 이젠 차츰 변화해야할 시기가 왔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또, 스페인 본돔(Vondom)을 위해 트위스트 & 샤우트(Twist & Shout) 카페트를 디자인하기도 하였습니다. 이 카페트는 카페트가 왜 항상 사각형이나 원형이어야만 할까, 라는 물음에서 출발했습니다. 의자나 소파에 의해 카페트가 밟히지 않는 자유로운 형태면 어떨까, 마치 떨어진 잉크가 흐르듯 유기적인 모습이면 어떨까, 하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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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림 라시드 20주념 기념 파티 초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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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아트 소파 제작회사인 루카 보피와 출시한 카림 라시드 컬렉션.
사진: 카림 라시드(Karim Rashid Inc.)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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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본돔을 위해 디자인한 트위스트 & 샤우트 카페트.
사진: 카림 라시드(Karim Rashid Inc.) 제공.

 
 
 
카림 라시드에서의 일과는 어떻게 되시나요?
여느 회사와 마찬가지입니다. 아홉 시에 출근해서 여섯 시에 칼퇴근합니다. 다만 업무 분위기는 다소 자유로운 편입니다. 일단 사무실 자체가 마치 클럽처럼 현란한 데다가 디제잉을 하는 카림 때문에 늘 비트 있는 음악이 울려 퍼지고 있죠. 그게 싫은 사람들은 각자 헤드폰을 쓰고 음악을 듣습니다. 업무 중 페이스북 서핑이나 유튜브 시청을 할 때에는 어느 누구도 눈치를 보지 않고요. 점심시간도 특별히 정해져 있지 않아서 원하는 시간에 다녀오면 되고, 출입기록 카드 같은 것도 없습니다. 문화적인 차이겠지만, 점심시간에 직원들끼리 식사를 하면서 와인이나 맥주를 곁들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요. 금요일 오후에는 사무실에서 맥주를 마시며 탁구 경기를 열기도 합니다. 이전에 다니던 회사도 비슷했는데, 제가 한국에서 회사 생활을 하게 된다면 어떻게 적응할지 벌써부터 걱정이 됩니다.
 
카림 라시드의 디자인 파트는 제품, 그래픽, 인테리어/건축, 이렇게 세 개의 팀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제가 속한 그래픽 디자인 팀은 브랜딩, 패키지, 패턴, 아이덴티티 개발 등이 주 업무인데요. 나머지 두 팀과 긴밀한 관계 속에서 분업과 협업의 형태로 진행됩니다. 아무래도 그래픽 디자인은 제품과 공간, 모든 곳에 필요하다보니 저는 늘 여러 프로젝트에 양다리를 넘어서, 문어다리를 걸치고 있죠.
 
 
작년에 열린 <광주디자인비엔날레>에도 참여하셨었죠?
작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의 남북단일기 디자인전에서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분단되기 이전부터 사용한 태극의 기본 형태를 유지하면서도 곡선의 반복을 통해 우리 한민족의 역동성과 긍지를 표현해보았죠. 평화를 염원하는 상징이나 지리적인 형태의 강조보다는 통합된 국가로서의 포괄적인 상징이 우선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음과 양의 중심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의 형상은 팔도강산에 뜨고 지는 해이자, 달을 상징합니다.
 
 
최근 진행하신 개인작업은 어떤 것들이 있으신가요?
수요일 필름의 CI 리뉴얼 작업을 진행하였습니다. 물 수(水)의 여백에서 생성되는 여섯 가지 삼각형과 사각형 조각들의 다양한 조합으로 인해 추상적인 형태에서부터 글자, 아이콘 등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유동성을 가진 CI를 디자인하였습니다.
 
또, 뉴욕 <제너레이티브 아트 쇼(Generative Art Show)> 전시에 참여했던 <카모아시스(Camoasis)>라는 작품을 디자인하였습니다. 작품의 제목인 ‘카모아시스’는 카모플라주(Camouflage)와 오아시스(Oasis)의 합성어입니다. 이 작품은 프로그래밍 언어인 ‘프로세싱’을 사용하여 디지털 점묘법으로 뉴욕의 센트럴파크를 효현한 작품입니다. 마치 맨해튼의 그리드를 연상시키는 각진 형태의 ‘센트럴파크’라는 한글을 중첩시켜 도심 속의 오아시스를 재해석하고자 하였습니다. 렌티큘러에 인쇄하여 보는 각도에 따라 원들의 크기가 세 가지로 변화합니다.
 
이외에도, 제주 봄 카페 & 스테이 펜션을 위한 쿠션 컬렉션과 역사상의 모든 클래식 뮤지션들의 정보를 담은 아카이브 사이트를 위한 로고, 어반 스타일 편집 매장 코리도(Corridor)를 위한 로고도 디자인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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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디자인비엔날레> 남북단일기 디자인전 초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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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필름’의 CI 리뉴얼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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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래밍 언어인 ‘프로세싱’을 사용하여 디지털 점묘법으로 표현한 뉴욕 센트럴파크 작품인 <카모아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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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봄 카페 & 스테이 펜션을 위한 쿠션 컬렉션. 이 쿠션 컬렉션은 제주 봄 카페 & 스테이 펜션의 BI 어플리케이션 중, 로고를 해체, 재조합해서 만든 패션을 활용하였다.
 
 
 
굉장히 다양한 작업을 진행하고 계신데요. 카림 라시드에서 근무하시면서 동시에 개인작업을 진행하시는 데에 어려운 점은 없으신가요?
아무래도 시간적으로 어려움이 많습니다. 제게는 비타민 같은 존재인 딸과 놀아야 하고, 주말에는 거의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편이라, 개인작업을 할 시간은 평일 퇴근 이후밖에 없죠. 하지만 제 개인작업을 할 때가 가장 행복하기 때문에 그 시간이라도 주어지는 것에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한국 회사에서는 소속된 디자이너가 회사 밖에서 개인작업을 하는 것을 별로 탐탁지 않게 보는 시선이 많다고 들었는데 사실인가요? 카림에게 이번에 CA에 제 작업들을 소개하게 되었다고 얘기했더니 아주 좋은 기회라며 흔쾌히 저의 회사 작업 공개를 허락해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묻지도 않았는데 제가 한국에 나갈 때, 혹여 컨퍼런스 기회가 생기면 바쁜 자신을 대신해서 카림 라시드의 그래픽 디자인 작업에 대해 강연을 하라고 해서 오히려 제가 놀라기도 했고요. 작년 레드 닷 어워드 연감에는 카림의 작업과 제 개인작업이 함께 실리기도 하였습니다.
 
 
끝으로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저희 회사가 암스테르담 지사를 닫는 대신, 올 4월경에 홍콩에서 15분 거리에 위치한 중국 선전시에 지사를 오픈합니다. 눈부시게 발전한 중국의 위상을 피부로 느끼고 있지요. 사실 저는 해마다 한국 클라이언트가 늘고 있는 실정이라, 서울에 아시아 지역을 관리하는 지사를 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중국으로 지사가 낙점되었습니다. 요즘은 중국 지사 브랜딩과 사무실 인테리어 작업이 한창이라 제가 할 일이 많습니다. 우선 회사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는 것이 목표이고요. 개인적으로는 여러 분야의 창작인들과 협업을 통해 함께 호흡하며, 디자인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실험적인 작업들을 더 많이 해나갈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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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의 모든 클래식 뮤지션들의 정보를 담은 아카이브 사이트를 위한 로고 디자인(왼쪽)과, 어반 스타일 편집 매장 코리도를 위한 로고 디자인(오른쪽). ‘코리도(Corridor)’는 ‘복도, 통로’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박영하
YOUNGHAPARK.NET

박영하는 현재 뉴욕 카림 라시드(Karim Rashid)에서 시니어 그래픽 디자이너로 근무하고 있다. 2011년부터 미국 아틀란틱 뮤직 페스티벌(AMF)의 디자인 디렉터를 역임하고 있으며, 프리랜서로 활발한 개인작업과 전시 활동을 병행해오고 있다. 다수의 디자인 어워드에서 수상한 경력을 가지고 있으며, <2010 헤이그 ‘디자인과 정부’ 비엔날레 유럽연합기디자인전>, <2012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 <2013 광주디자인비엔날레 남북단일기디자인전> 등에 참여하였다. 뉴욕의 비영리 창작인단체 크라우디드(The Crowded)의 회원이며, [뉴욕의 보물창고]의 저자이다.
 
 
 
 
 
 
 
 
 
이 기사는 ‘CA 2014년 2월호 : 모험을 즐기는 일러스트레이터들’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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