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 포럼: 12개의 기억들’ 아홉 번째 강연자는 디자이너 최예주였다. 그녀는 이번 강연 주제이자 자신의 스튜디오 이름에 대한 설명으로 강연을 시작했다. “저는 현재 노웨어 오피스(nowhere office)란 개인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어요. 대학원 과정을 마치기 직전에 장난처럼 지은 이름인데요, 제 작업이나 삶을 둘 다 잘 표현할 수 있는 문구인 것 같아 이번 포럼에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디자인했을 때에 작업이 관객과 만나는 그 순간, 그때의 공간과 시간 그러니까 관객과 어떻게 마주하는지에 관심이 쏠려있기 때문이죠.”
 
보는 행위에 따라 달라지는
이번 강연에서 그녀가 제공한 소책자의 작업 ‘Drawing With Paper’은 사실 2006년의 것이다. “2006년까지 저는 쭉 서울에서 살았어요. 학부도 여기서 다니고 회사도 다녔고요. 그러다가 회사를 그만 두고 미국으로 떠나기 전까지 약간의 공백기가 있었는데, 그때 했던 작업이에요. 종이를 갖고 노는 걸 워낙 좋아해서 집에서 A4를 접으며 놀다가 접은 채로 프린트하면 어떻게 될까 궁금해지더라고요. A4를 접고 그 규격에서 벗어나는 부분은 잘라낸 후 잉크젯 프린터로 프린트한 작업이에요. 프린트 후 펴보면 접었던 행위의 흔적이 남아있고 A4라는 규격에 맞추기 위해 잘랐던 흔적도 남아 있잖아요. 그러한 점에 흥미를 느꼈어요.”
 
“보는 행위나 각도 그리고 관객과의 거리에 대한 실험을 계속 해온 것 같아요. 미국에서 한 전시의 아이덴티티 디자인을 맡았을 때, 갤러리 외측 유리와 벽 사이의 좁은 공간을 활용하는 방법을 고민하게 되었죠. 해당 공간의 측면에선 글자가 제대로 파악되지 않지만 정면을 마주하면 글자가 읽히는 일종의 착시 기법을 사용했어요. 새롭지 않은 기술이지만 사람들을 공간으로 끌어들이는 동시에 2차원과 3차원의 매체를 넘나드는 게 계속 반복되죠. 이와 같은 작업 방식은 현재까지 지속되는 제 특징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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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흐르는 듯이
그녀는 물 흐르는 것처럼 살자는 주의로 여기까지 온 것이라 밝히며, 미국으로 향한 것 이외엔 특별한 방향성 없이도 주어진 기회를 따라서 오다보니 자연스레 그것들이 모여 하고 싶은 일이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녀의 대학원 논문 파이널 리뷰 시간에 참여했던 한 사람의 제안으로 건축/어반디자인회사 WXY에서 일하게 되었고, 뉴욕의 백화점 바니스 뉴욕(Barneys New York)의 연락으로 아트 디렉터 일을 경험했다. “이전까지의 작업과 달리 특정 계층을 위한 디자인이었기에 생경하긴 했지만 아트 디렉터 일을 하기로 결정했던 건 당시 바니스가 아예 새로 브랜딩 되던 시점이었기 때문이에요. 재미있는 경험이 될 것 같았죠.”
 
결국 모든 것은 사람을 향해
그녀는 작업 이야기를 이어갔다. “사우스 스트리트 씨포트(South Street Seaport) 지역은 뉴욕이 시작된 곳이나 마찬가지인 곳으로 굉장히 유서 깊은 동네인데, 한때 마피아의 영향권에 있기도 했고 현재는 개발회사에 의해 관광지화된 참 우여곡절이 많은 곳이에요. 그런데 이곳이 허리케인 샌디의 피해를 입으며 상황이 더욱 열악해졌죠. 미국그래픽아트협회(AIGA)에서 허리케인 샌디의 피해를 입은 지역들을 돕는 디자인/릴리프(Design/Relief)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저는 사우스 스트리트 씨포트 지역을 담당하게 되었어요.”
 
2년에 걸쳐 해당 프로젝트를 진행한 그녀는 첫 번째 단계에서 씨포트 지역의 주민들이 서로를 향해 감사를 표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주민들 자력으로 1년 만에 허리케인 샌디로부터 동네를 복구해냈는데, 이웃들 서로를 향해 감사의 카드를 쓰고 이를 도르래를 통해 매달 수 있는 공간을 디자인한 것이다.
 
“첫 단계가 보이지 않았던 개개인을 시각화한 것이라면 두 번째 단계에선 이미 사라져버린 문화를 시각화하는 작업을 진행했어요. 이 동네에 오래 살았던 인물들을 여러 차례 걸쳐 인터뷰하고 이야기들을 모아서 웹을 통해 이를 들을 수 있게끔 하는 일종의 유령 투어 페이지를 만들었거든요. 예전 사진들도 함께 아카이빙하고요. 의도적이진 않았지만 여태까지의 작업을 살피면 결국 사람이 중심에 있었던 것 같아요. 처음엔 사람이 보는 각도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면, 이제는 현상적인 것을 넘어 문화, 역사, 개개인의 이야기로 그 방향이 넓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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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예주
YEJUCHOI.COM

뉴욕에서 디자이너로 일하고 예일대학교에서 그래픽디자인을 가르치고 있다. 서울대학교 디자인학부와 예일대학교 대학원에서 그래픽디자인을 공부했다. 2006년 다니던 직장(LG전자 인터페이스 디자이너)을 그만두고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에서 다양한 작업에 뛰어들었다. WXY라는 건축/어반디자인회사에서 그래픽디자인 디렉터로, Barneys New York에서 아트디렉터로 일하기도 했으며, 2009년부터는 nowhere office라는 이름을 가지고 뉴욕을 기반으로 디자인과 공공미술 작업을 해오고 있다. nowhere office라는 스튜디오 이름은, 마침 그가 작업 중이었던 석사 논문의 제목 ‘You, Me, Here, Now: Seeing and Subjectivity’에서 가져온 것이다. 장소, 순간, 상황 특정적인 소통과 경험에 관심이 많아 here(여기), now(지금)이라는 단어들에 주목했고, 작업실보다는 밖에서 돌아다니며 이방인들을 만나고 몸으로 부딪히는 작업을 많이 하다 보니 nowhere(그 어디도 아닌, 그 어디에도 없는) 사무실이 말이 되는 것 같았다.
 
 
 
CA 포럼: 12개의 기억들

일시: 2015년 5월 20일
장소: 대학로 예술가의 집
강연자: 최예주

크리에이티브 디자인 매거진 CA는 세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디자이너들과 그들의 작품을 소개해왔다. 오랜 시간 매거진과 컨퍼런스를 통해 크리에이티브 디자인 업계를 다채롭게 조명해온 CA는 이제 디자이너들의 보다 깊은 이야기를 공유하고자 한다. 은 매회 각 강연자가 직접 디자인한 포스터를 제공하고 있으며 이는 두성종이와 해인기획의 협찬을 통해 제작한다.
 
 
 
 
 
 
 
 
 
 
 
이 기사는 ‘CA 7월호 : 자기홍보,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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