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의 판매 전략은 타이포그래퍼 스스로 자신의 이름과 재능을 깎아내리는 것이다.
 
 
 
타입과 디자인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2001년 유워크포뎀을 설립한 이후로 추구해온 나의 목표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폰트를 세상에서 가장 멋진 상점을 통해 공급함으로써 디자이너와 파운드리를 지원하는 것이었다. 모든 사람이 원하는 이상적인 상점. 처음 발견한 사람들이 그곳을 자신의 주변인에게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드는 독립 운영 상점. 나 자신도 이용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상점을 설립하고자 했다.
 
최근 폰트 시장은 ‘세일, 세일, 세일’이라는 메시지를 내건 파격 세일 전략의 늪에 깊게 빠져있다. 이러한 현상은 ‘독점적 폰트 유통 구조’로 인해 빚어진 것으로 파운드리의 입장에서는 어쩔 도리 없이 따를 수밖에 없다. 급기야 스스로 자신의 신규 디자인 상품 판매에 ‘대박 세일!’ 전략을 내세우는 파운드리들도 하나둘씩 등장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러한 현상이 꾸준히 확산되는 것을 마치 내 몸에 피부 질환이 퍼져나가는 것을 바라보는 심정으로 지켜보았다.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번들 제품’이 계속해서 시장에 등장하고 있다. 그리고 결국에는 모든 사람이 피해를 볼 것이다. 이러한 시장 상황은 마치 죽음을 향한 경주와도 같았지만 나 역시 SNS(goo.gl/MizQJy)에 이에 대한 자조적인 글을 올리는 것 외에는 별다른 행동을 취할 길이 없었다.
 
하지만 ‘더는 이러한 상황을 견딜 수 없다’는 이유로 자신의 제품 전체를 우리 상점에서 빼기로 결정을 내린 한 파운드리로부터 몇 가지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비로소 제정신을 차리게 되었다. 내 어안이 벙벙하게 만든 사실은 현재 시장이 겪고 있는 문제가 독점적 폰트 유통 구조 때문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들조차도 결국 자신의 폰트를 판매하기 위해서는 그 구조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폰트 커뮤니티와 디자인 커뮤니티 전체에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달했다. “우리는 파격적 세일 및 번들 판매 전략의 실체를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우리 시장을 점점 잠식하고 있는 이러한 유통 방식의 이면에는 현재 상황을 개탄하는 디자이너들조차도 어쩔 수 없이 굴복하게 하는, 어느샌가 당연하게 되어버린 독점 기업의 횡포가 도사리고 있다.”
 
폰트는 문자적으로나 숫자상으로나 지금보다 더 높은 대우를 받아야만 한다. 특별한 용도를 위해서 큰돈을 들여서라도 제작할 의지가 있는 클라이언트들에 의해 맞춤형 폰트 제작이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이를 증명해준다. 맞춤형 폰트 디자인에는 섬세하고 아주 독특한 작업이 필요하다. 이처럼 소중한 우리의 결과물을 무료로 나누어주거나 번들 구성 업자들의 압박에 어쩔 수 없이 번들 상품으로 넘겨주는 일은 이제 그만둬야 한다.
 
한편 앱 기반 환경에서 벌어지고 있는 폰트 사용권 ‘대여’ 판매 방식은 폰트의 ‘가치 절하’를 이끄는 또 다른 요인이다. 하지만 이조차도 100군데 내지는 500여 군데 파운드리 혹은 디자이너에게 정기적으로 연락을 취하며 그들의 참여를 요구하는 번들 구성업자들이 야기하는 폐해에는 비교가 안 된다. 번들 구성업자들은 100-500개의 폰트를 한꺼번에 단돈 1달러 혹은 그와 비슷한 말도 안 되는 가격에 판매하면서, 그를 통해 대중에게 상품을 노출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과 전혀 동떨어진 이야기이다. 번들 판매 방식은 폰트의 가치를 떨어뜨릴 뿐이며 디자이너들도 이를 통해 어떠한 대중적 주목도 받을 수 없다. 게다가 이는 자신이 무엇을 구매했는지도 모르는 소비자들에 의해 너무 많은 폰트가 사장되는 상황을 초래한다. 이것은 한번 쓰고 버릴 싸구려 장난감 몇백 개를 샀을 때와 고급 레고 장난감 하나를 마련했을 때의 소비자 행동 차이와 일맥상통한다.
 
물론 폰트 판매 촉진을 위해 약간의 세일 전략을 사용하는 것은 현명한 방법이다. 필요하다면 당연히 택할 수 있는 전략이다. 지금 당장 몇몇 폰트를 세일 품목에 올려놓아도 좋다. 하지만 그것이 80% 혹은 90% 세일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우리의 폰트들은 책정된 가격 그대로 받을 자격이 있다. 더 이상의 무료 배포는 허락할 수 없다.
 
 
 
 
 
마이클 폴 영
MICHAEL PAUL YOUNG

YOUWORKFORTHEM.COM

현재 세계에 남아있는 독립 폰트 대규모 판매업체 중 하나인 유워크포뎀(YouWorkForThem)의 소유주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다. 태국 방콕에서 생활하며 작업하고 있다.
 
 
 
 
 
 
 
 
 
이 기사는 ‘CA 2015년 10월호 : 타입의 미래’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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