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타입이 과연 단단한 토양과 규칙 위에서 실험이 허용되는 지속적인 분야로 자리 잡은 것인지 아드리안 쇼네시와 함께 탐구해 본다.
 
글 — 아드리안 쇼네시(ADRIAN SHAUGHNESSY)
번역 — 이화경
일러스트레이션 — 리종 파레인(RIZON PAREIN), RIZON.BE
 
 
 
타이포그래피는 뜨거운 주제다. 많은 학생들의 학위 논문에 단골 주제로 등장하고 대중적인 토론회에서 자주 거론될 만큼 타이포그래피는 지적 탐구의 대상으로 자리 잡았다. 예전 같으면 거리를 오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바스커빌’이나 ‘헬베티카’를 알 필요가 전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누구나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선호와 견해를 표현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디자이너가 아닌 많은 사람들도 이제는 명함이나 웹페이지, 결혼초대장에 쓰이는 타입페이스를 옷이나 차에 견줄 만큼 중요한 의미를 부여한다. 타투부터 세계적인 브랜딩에 이르기까지 타입페이스 선택은 이제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이 같은 사실은 오늘날의 그래픽 디자이너와 타이포그래퍼에게 좋은 소식이다. 텍스트를 보완하는 단순한 그래픽의 역할을 뛰어넘어 타이포그래피로 창조적 표현을 할 자유가 과거보다 훨씬 많이 보장되고 있다. 이런 표현의 자유는 타입을 비틀고 겹쳐서 추상적인 형태를 만들어 내거나 아예 새로운 타입페이스를 창조하는 식으로 드러난다. 새로운 타입페이스의 창조는 오늘날 점점 더 보편적인 방식이 돼가고 있다. 디자이너와 타이포그래퍼는 기존의 타이포그래픽 전통을 근본부터 바꾸기 시작했으며 실험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디자이너에게는 12개의 타입페이스만 있으면 된다는 이론은 이제 낡은 것으로 취급받기 시작했다.
 
물론 과감한 타입과 규범을 탈피하려는 타이포그래퍼들은 언제나 존재해 왔다. 모호이너지(Moholo-Nagy)의 초기 실험들과 그의 ‘타이포포토(typophoto)’ 이론, 1980년대 네빌 브로디(Neville Brody)가 <페이스>라는 잡지를 통해 보여준 표현력 넘치는 ‘타입 그림(painting with type)’, 그리고 상상을 초월하는 오늘날의 소프트웨어 기반 타입페이스 등 타이포그래피는 기존의 타이포그래픽 형태에 만족하지 못하는 디자이너들에 의해 꾸준히 응용되고 변화되어 왔다.
 
실험적인 타이포그래피는 더 이상 전위적인 존재가 아니다. 디자이너 헤자니 다우 벨루(Rejane dal Bello)가 네덜란드의 스튜디오 둠바에서 일하던 시절 만들었던 알츠하이머 재단의 타이포그래피가 이를 증명하는 대표적인 예다. 과감하게 비튼 타입의 강렬한 표현이 브랜딩에 반영되면서 이 타이포그래피 작품은 거의 전 세계적 차원에서 꾸준한 소통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현대 타이포그래피에서 이러한 자유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는 뜻일까, 아니면 더 이상 나아갈 데가 없는 지나친 방종을 누리고 있는 것일까?
 
 
 
 
 
헤자니 다우 벨루
REJANE DAL BELLO

REJANEDALBELLO.COM

헤자니 다우 벨루는 런던에서 활동하는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일러스트레이터다. 리우데자네이루가 고향인 그녀는 스튜디오 둠바, 울프 올린스를 포함한 여러 브랜딩 디자인 회사들에서 일했다. 지금은 ‘스튜디오 헤자니 다우 벨루’를 운영하면서 세계적인 클라이언트들을 상대로 시각적 브랜딩 및 시각적 아이덴티티 작업을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타이포그래피를 대하는 철학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굳이 말하자면, 신경 쓰지 않는 게 제 철학입니다. 그냥 타입을 이미지처럼 대할 뿐입니다. 이는 어떤 창조적 입장에서가 아니라, 제가 6살 때부터 읽고 쓰는 데 어려움을 느껴 왔던 경험에서 비롯된 철학이에요. 당시 난독증은 병으로 인식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치료를 받지는 못하고 수업이 끝난 뒤 학교에 남아 따로 교육을 받아야 했죠. 저는 모든 글자들을 시각적으로 인식했습니다. 단어의 의미는 그저 어림짐작으로 이해했고요. 이런 과거는 제가 어떻게 디자이너가 되었는지를 짐작하게 해주죠. 저는 모든 것을 하나의 형태 혹은 일러스트레이션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인지 길이가 긴 편집 디자인 프로젝트에는 마음이 가질 않죠. 복잡한 의미를 개념적으로 축약해서 단순한 상징적 이미지로 변환시키는 것에 흥미를 느낍니다. 이런 성향은 대체적으로 디자인과 관련된 직업을 유지하는 데 결코 불리하지 않습니다.
 
 
타이포그래픽 전통, 즉 규칙과 관습 등이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칩니까?
규칙과 관습을 깨려면 우선 그것들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저는 늘 시각화에 필요한 핵심 요소가 무엇인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따라서 규칙과 관습이 거기에 도움이 될 땐 주저 없이 따릅니다. 그러나 보통은 우리가 ‘황금률’이라고 부르는 것에 저항함으로써 프로젝트의 한계를 뛰어넘으려고 노력합니다. 단순히 반항의 의미로서가 아니라 새로운 전통을 창조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믿기 때문이죠. 또한 그렇게 함으로써만이 새로운 길을 열고 개척할 수 있으니까요.
 
 
많은 디자이너들이 오늘날 새로운 타입페이스 제작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세상에는 이미 아름답고 기능적이고 실험적인 타입들을 너무나 많기 때문에 디자이너들이 더 이상 새로운 타입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어떤 새로운 것이 등장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죠. 새로운 것이 필요 없다는 생각은 사람들에게 더 이상 호기심을 갖지 말라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그러나 호기심이야말로 창조적인 사람들에게는 없어선 안 될 힘입니다. 단지 유행을 따르려는 의도에서 새로운 것을 추구해선 안 되겠죠. 사람들은 종종 유행에 충실한 것이 성공의 지름길이라고 착각합니다. 이는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죠. 그러나 새로운 타입 제작이 당신에게 중요하다면 해야 합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타입의 숫자가 당신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최근 타이포그래피와 관련해서 당신의 관심을 끄는 건 무엇인가요?
두 가지가 제게 감동을 줬습니다. 하나는, 1930년대 바실리 칸딘스키(Vasily Kandinsky)의 색채이론을 교육하는 과정에서 하인리히 지그프리트 보만(Heinrich Siegfried Bormann, bit.ly/kandinsky-theory)이 음악을 시각적으로 분석한 작업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폰트는 아닌데, 충분히 그렇게 읽어낼 수 있는 작품이죠. 다른 하나는 뤼디 휘드이(Rudy Guedj, rudyguedj.com)가 만든 ‘클리프(Kliff)’ 폰트입니다. 정말 기묘하고 독특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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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알츠하이머 재단(Alzheimer Netherlands) 캠페인
 
 
rejane dal bello
 
브라질리아(Brasillia) 50주년 기념 – 이벤트 스타일(Event Sty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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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 캘리그래피(Orange calligraphy)
 
 
 
 
 
오어 타입
OR TY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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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어 타입은 2013년 그뷔드뮌뒤르 울바르손(Guðmundur Ulfarsson)과 마스 프로인트 브륀세(Mads Freund Brunse)가 결성한 GUNMAD의 타입페이스를 발행하기 위해 설립된 타입 파운드리다. 맞춤형 타입 프로젝트와 라이선스를 다루면서 결과적으로 새로운 알파벳 목록의 증가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당신들의 웹사이트를 보면 “우리는 타이포그래픽 전통과 관습에 도전하는 타입페이스를 추구합니다.”라고 적혀 있죠. 이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나요?
타입페이스 디자인은 좋든 나쁘든 지켜야 할 규칙이 많은 분야입니다. 우리는 타입페이스가 기존의 도구와 수단이 지닌 한계 때문에 결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우리에게 가능한 수단들에 의해서만 글자들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는 의미죠. 캘리그래피가 그 대표적인 수단입니다. 그러나 기술을 연마함으로써 어느 정도는 한계를 극복할 수 있죠. 우리는 현재 디지털 툴로 이 기술을 얼마나 신장시킬 수 있는지를 흥미롭게 살펴보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수백 년 전의 기준을 적용해서 결코 수백 년 전의 모습처럼 보이지 않는 완벽한 타입페이스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런 모순된 현상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하고 구상하는 것입니다. 즉, 수백 전의 도구들을 가지고 현대적인 형태를 창조하는 거죠.
 
 
타입페이스를 디자인할 때 어디에서 아이디어를 얻습니까?
우리는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상상을 뛰어넘는 참신한 타입페이스를 만들고 싶습니다. 타입의 세세한 부분에서부터 텍스트가 흘러가는 방식에 이르기까지 어떤 지점에서든 참신함은 추구될 수 있죠. 우리는 오로지 직관해 의지해 아이디어를 개발해 나갑니다. 친구들의 의견에도 귀를 기울이고요.
 
 
오늘날의 타이포그래피에 커다란 흐름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타이포그래피 분야 전반에 걸쳐 많은 흐름들이 존재합니다. 오래된 프랑스 세리프나 깔끔한 리바이벌 버전의 독일 프락투어를 완전무결하게 다듬기, 스위스 산세리프의 현대적 정비, 특정 글자를 대체하는 깔끔한 심볼들로 기하학적인 대문자 산세리프를 만드는 실험 등이 진행 중이죠. 어디서 출발하고 어디서 끝이 날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타이포그래피는 그 자체로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죠. 이는 좋은 현상이라고 우리는 믿습니다! 타이포그래피의 수준은 한층 높아졌고 우리는 흥미로운 타입페이스들을 끊임없이 발견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이 앞으로도 더욱 강화되면서 사람들이 글자들을 읽는 방식에 변화를 줄 수 있었으면 합니다.
 
 
최근 당신들이 감동을 받은 타입페이스가 있다면요?
한동안 우리는 제레미 쇼데렛(Jeremy Schorderet, bit.ly/Schorderet)의 ‘다셔(Dasher)’ 타입페이스에 환호했습니다. 요즘에는 얀 노바크(Jan Novak, bit.ly/jannovak)의 작품에 빠져 있습니다. 그는 정말 특이한 글자 형태들을 창조하죠. 참 마음에 듭니다.
 
 
 
landscape photography
 
진행 중인 타입페이스 작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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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어 타입 전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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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부터 차례대로: 부기 스쿨(Boogie School), 랜드나마(Landnama), 라스베가스(Las Vegas), 세파라트(Separat) 타입페이스
 
 
 
 
 
 
 
 
 
 
 
 
 
이 기사의 전문은 ‘CA 2015년 10월호 : 타입의 미래’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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