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끔하고 미니멀하며 명료하다. 어쩌면 모더니스트라고, 어쩌면 스위스 스타일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펜타그램의 파트너 앵거스 하일랜드는 특정한 스타일에 한정되길 원하지 않지만, 이 모든 수식어들은 그의 작업을 묘사하기 위해 기꺼이 사용될 만한 단어다. 그의 프로젝트 다수가 명료하고 질서 잡힌 미학을 지닌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그의 하루 일과는 짜임새와는 거리가 멀다.

하일랜드가 꽉 짜인 일정을 싫어하는 건, 대담하고 지적인 본성 때문만은 아니다. 사실 그가 맡는 업무 자체가 정신 없는 하루를 요구한다. 끊임없이 프리젠테이션을 하고, 고객들을 만나고, 굵직한 아이덴티티 프로젝트들을 감독하며, 세계 곳곳으로 향하는 비행기 편을 예약한다. 그리고 때때로, 우리 같은 사람들과 이야기 나눌 시간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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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작품을 만들어 내는 일, 하일랜드가 바라보는 북 디자인이란 그런 것이다.

“다른 일에는 익숙하지가 않다. 꽉 짜인 게 싫은데, 그냥 익숙하지 않아서 그렇다. 내겐 매일매일이 사뭇 다르다.” 그는 말한다. 펜타그램 사무실 바깥의 초록색 울타리가 햇살에 밝게 빛난다. 울타리는 실내의 갈색 벽돌 벽과 멋진 대조를 이룬다. 벽에 매달린 보드가 그 동안 펜타그램이 디자인했던 세계적인 대기업들의 로고 및 로고타입들을 보여준다. 그는 팔을 펼치며, 우리가 앉아 있는 회의실 전면의 유리 사이즈를 설명한다. “넓은 공간을 지닌 상당히 괜찮은 건물이다. 감압실 같다고나 할까. 공간에 여유가 있어 쉬기 좋고, 고요하다. 만일 좀 더 좁은 공간에 모두가 밀집해 있었더라면, 정신 없는 감정 기복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풍수를 믿지는 않지만, 이 공간은 일종의 안정 장치처럼 작용한다.”

그러나 수요일과 금요일이면, 그는 이곳 웨스트 런던 노팅힐의 사무실로 출근하는 대신에, 이슬링턴에 자리한 로렌스 킹 출판사(Laurence King Publishing)에서 일한다. 그곳에서의 직함은 자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지만, 하일랜드 본인은 이를 ‘임시 직장(my gig)’이라 부른다. 로렌스 킹 출판사 사무실이 집에서 도보로 7분 거리라는 점도 그에게는 만족스럽다. 바로 가까운 곳에, 또 다른 클라이언트인 캐스 아트(Cass Art)가 있다. 그래서 그는 아침식사 겸 회의를 단골 카페에서 진행한다. 어퍼 스트리트에 자리한 오토렝기스(Ottolenghi’s) 말이다.

“10시 정도에 일을 시작한다.” 그는 설명한다.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고 나면 시간이 좀 남는데 이 시간을 보통 카페에서 보낸다. 이곳에서 종종 아침식사 겸 회의를 하곤 한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좋아하는 곳이라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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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색상과 이미지를 연관짓지만, 하일랜드는 색상을 서체와 연관짓는다.

“예를 들면 어제는 마크 캐스(Mark Cass)와 회의를 했고, 금요일에는 공동 저자와 회의가 있다. 로렌스 킹에서 일러스트레이션에 관한 또 다른 책을 내놓을 예정이기 때문이다. 아마 1년 혹은 1년 반 뒤면 출간될 것이다. 굉장히 재미 있는 책이다.” 하일랜드와 로렌스 킹과의 인연의 뿌리를 찾기 위해선 한참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2005년에 로렌스 킹의 자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었지만, 이미 1998년 펜타그램에 합류하기 훨씬 이전부터 로렌스 킹과 일해왔다. 군대 보병이던 시절부터, 로렌스 킹에서 타이포그래피와 그래픽 디자인에 관한 책들을 디자인을 맡기도 했다. 2001년엔 하일랜드는 『펜 앤드 마우스: 커머셜 아트 앤 디지털 일러스트레이션(Pen and Mouse: Commercial Art and Digital Illustration)』을 편집했다. 이 작업은 이후 두 권의 컨템포러리 일러스트레이션 책으로 이어졌는데, 그 중 하나가 베스트셀러 『픽처 북 (Picture Book)』이다. 2006년에는 『c/id: 시각 아이덴티티』와 『브랜드 포 더 아트(Brand for the Arts)』를 내놓았는데, 적어도 저술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관심사가 아이덴티티 쪽으로 옮겨간 셈이다.

로렌스 킹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괜찮은 주제를 추천하고, 이는 공동 저술 작업으로 마무리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역할은 대부분 출간 예정작들의 디자인을 감독하는 일이다. 미술, 그래픽 디자인, 영화, 패션, 인테리어 디자인, 사진 등, 그래픽 디자이너들이라면 관심 있어할 시각 관련 주제의 책들이다. 하일랜드는 모든 책 디자인을 로렌스 킹의 기준에 부응할 수 있도록 감독하면서, 외부 프리랜서 50명과 편집자, 출판인, 홍보 담당자들과도 회의를 진행한다.

“편집자가 매일의 디자인 프로세스를 관장하고, 나는 해결책을 들고 가서 모두와 함께 살펴 보는 식이다.” 그는 설명한다. “작업의 대부분은 표지에 관련된다. 일단 내부 그리드 디자인에 합의하면, 이후 상당 부분에 관여를 받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 할 일이 많다. 왜냐하면 책이란 대체적으로 자기 홍보적이니까. 그러니 표지가 곧 광고다. 표지 이외에 다른 홍보 예산도 없다. 그런 만큼 표지는 정말로 중요하다.”

하일랜드와 함께 자주 일하는 사람 중 한 사람이 바로 그의 아내, 마리온 듀차스(Marion Deuchars)다. 그는 출판사 하트 에이전시(Heart Ageny)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지난 8월 『렛츠 메이크 섬 그레이트 아트(Let’s Make Some Great Art)』를 출간했다. 출판계가 디지털 출판이라는 변화에 직면한 요즘, 하일랜드는 이런 같은 책들 덕분에 앞으로도 인쇄 출판 시장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렛츠 메이크 섬 그레이트 아트』는 커다랗고, 또 인터랙티브한 책이다. 아이는 물론 어른을 위한 미술 이야기들이 가득하고, 그녀만의 창조적인 기법들도 소개한다.

“니나 차크리바티(Nina Chakribarti)의 『마이 원더풀 월드 오브 패션(My Wonderful World of Fashion)』, 마리온의 『렛츠 메이크 섬 그레이트 아트』와 『하우 투 비 더 베스트 버블 라이터 인 더 월드 에버(How to Be the Best Bubble Writer in the World Ever)』은 모두 정말 잘 만든 책이다. 나는 이 책들을, A-O-K-L, 즉 아이를 지향하는 어른들의 문학이라고 부른다.”

하일랜드는 가치 있고, 오래 간직할 수 있는 책 디자인을 지향한다. 오래 간직할 수 있는 책이란, 일견 하일랜드의 또 다른 클라이언트인 펭귄 북스의 원칙과 반대인 것처럼 보인다. 1935년 펭귄 북스는 6펜스짜리 문고본을 내놓았다. 하지만 하위 브랜드인 펭귄 클래식은 물론이고, 펭귄 북스의 기조 역시 프리미엄 가치 쪽으로 전환되었다. 하일랜드는 펭귄이 최근 발간한 버지니아 울프 양장본 컬렉션의 아트 디렉팅을 맡았다. 품격이 조용히 스며 나오는 컬렉션이다. 작년에 작업했던 『나보코프 20선』 재출간본 역시 마찬가지다. 여기에서 하일랜드는 듀차스를 비롯하여 최고의 일러스트레이터들과 함께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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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스 킹 출판사의 자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앵거스 하일랜드는 일러스트레이션에 관한 책을 저술하는 한편, 『100가지 아이디어(The 100 Ideas)』 시리즈, 『솔 바스: 필름과 디자인(Saul Bass: A Life in Film & Design) 에서의 삶』 같은 책 표지 작업을 감독했다.

“펭귄에서 짐 스토더드(Jim Stoddard)를 위해 한 작업은 대부분 기간 도서 목록(backlist)이었는데, 대조적으로 선물용 도서 의뢰들도 있었다. 얼마 전 버지니아 울프 소설 작업을 마쳤는데, 책에는 표지 광고문이 없다. 그저 제목, 저자 이름, 면지(endpaper), 하드커버뿐이다. 일종의 예술작품(objet d’art)과 같다.” 그가 활짝 웃어 보인다.

펭귄으로부터 받은 의뢰는 노팅힐의 펜타그램 사무실에서 이뤄진다. “월요일, 화요일, 목요일은 런던 서쪽으로 가는데, 보통 9:30분이나 9:45분 사이에 도착한다. 서머타임이 시행되는 시기, 또 날씨가 괜찮은 날이면 운하까지 자전거를 타고 내려가곤 한다. 캘리 로드(Cally Road)에 가서 자전거를 가지고 리틀 베니스(Little Venice)까지 간 다음, 운하길을 따라 노팅힐로 돌아온다. 겨울에는 같은 길을 자동차로 오간다.” 그는 웃으며 말한다. 폭스바겐 투란(Touran)을 몬 지 4년째다. 두 아들, 해미시(Hamish)와 알렉스(Alex)를 태우고 다니기에도 좋고, 또 아이들과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외출하기에도 적당한 차이다.

펜타그램 사무실에 있을 때는, 자신의 팀과 함께 일한다. 동료 파비안 허먼(Fabian Hermann), 수석 디자이너 자라 무어(Zara Moore), 디자이너 니콜라 라이언(Nicola Ryan), 알렉스 존스(Alex Johns), 한국인 인턴 조규형이 하일랜드가 이끄는 디자인 팀이다. 순전히 우연의 일치이지만, 한국인 인턴 조규형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가 런던 커뮤니케이션 칼리지(London College of Communication) 출신이다. 학교 이름이 런던 프린팅 칼리지(LCP, London College of Printing)이던 시절, 하일랜드 자신도 그곳에서 정보 그래픽을 공부했다.

런던 오피스의 다른 파트너들과 마찬가지로, 앵거스 하일랜드 역시 널찍한 1층에 알코브형 작업 공간을 가지고 있다. 그의 맥 앞에 앉으면 바로 오른쪽으로 그의 디자인 팀이 보인다. 컴퓨터 옆에는 ‘드 래곤플라이 유기농 루이보스 차이 티’ 상자가 있다. 티백에서는 크리스마스 푸딩 같은 냄새가 난다. 하일랜드는 또한 외출할 때 트릴비 모자를 쓴다.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그의 자리에선 쉽게 디자이너들에게 말을 걸 수 있다. 하지만 하일랜드가 자정까지 데스크톱 출판 프로그램을 켜고 고되게 일하는 모습을 사무실에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오늘날 펜타그램은 인디자인 (InDesign)을 사용한다. 하지만 그가 직접 레이아웃을 만들던 시절, 그는 쿼크 익스프레스(Quark XPress)를 썼다.

 

*기사 전문은 CA Collection 01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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