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정의를 믿는 반브룩은 자신의 기준에 따라 함께 일할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을 구분한다. 이 로고는 「아큐파이 런던」 운동을 위한 것이다. 『애드버스터』의 디자인 및 아트 디렉션 역시 반브룩의 작업이다.

 

어렸을 적 조너선 반브룩은 많은 시간을 공동묘지에서 보냈다. 걱정하지 마라. 모리세이(Morrissey)적인 기질이나 노스페라투(Nesferatu)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니. 그가 묘지로 향한 이유는 타이포그래피를 공부하기 위해서였다. 오래된 비석과 기념비에 새겨진 글자들은 그에게 주요한 영감의 원천이 되었는데 지나간 활자 형태들을 되살리고 변용하여 현대적인 목소리를 부여하는 것은 그의 작업에 언제나 핵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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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어리 산스체가 사용됐다. 2012년엔 이 서체의 사촌 격인 프라이오리 어큐트체도 선보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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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브룩의 명성은 다수의 해외 프로젝트들로 이어졌다. 2010년 반브룩 스튜디오는 「제 17회 시드니 비엔날레」의 아이덴티티를 디자인했다.

 

나는 하이게이트(Highgate)에 살고 있다. 하이게이트 공동묘지가 있기 때문이다. 타이포그래피적인 측면이나 전반적인 작업 분위기에 있어서 묘와 비석은 어렸을 때부터 내게 진정한 영감의 원천이었다.”라며 반브룩이 이야기를 시작한다. “고전 타이포그래피에 관심이 많았는데, 당시 학교를 다니느라 머물렀던 런던에서 고전 타이포그래피를 접할 수 있는 장소는 교회와 묘지뿐이었다. 하이게이트에 들어서면 마치 잃어버린 문명에 발을 내딛는 느낌이 든다. 묘지에 들어서면 곳곳에 나무들이 있고 담쟁이 덩굴로 뒤덮인 낡은 묘비들이 있다. 분위기가 정말 아름답다.”

그가 고풍스러운 레터링에 흥미를 가지게 된 데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 중 하나는 바로 영원성(permanence)이다. 돌에 새겨진 글씨의 영원성은 오늘날의 쓰고 버리는 문화와는 상반된다. 묘비는 한 사람의 생애를 단 3줄의 문장으로 요약한다. 그러나 그렇게 짧은 요약은 돌 위에 남아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또한 이러한 비문이 디자인이 아닌 반숙련의 민속 미술 정도로 여겨진다는 점 또한 그를 매혹시킨 부분이다.

“보통 묘비는 미술이나 디자인 혹은 타이포그래피로 간주되지 않는다. 나는 이 점이 상당히 흥미롭다고 생각한다.” 그가 차가 담긴 머그잔을 내려다 보며 조용히 생각에 잠긴 채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러한 비디자인(non-design)은 동시대 그래픽에 상당히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사람들은 디자이너가 만들지 않은 무언가를 찾는다. 자신들의 작업에 미학적 차원을 더하기 위해 그렇게 찾아낸 것을 어느 정도는 끌어 들이기 마련이다.”

반브룩이 차린 타입 제작사, 바이러스폰트(VirusFonts)가 가장 최근 내놓은 타입페이스는 ‘프라이오리 어큐트(Priori Acute)’다. 약 10년 전 처음 개발을 시작한 기존 ‘프라이오리’ 패밀리에 디스플레이 측면을 더한 타입페이스로, 인각된 문자의 영향이 타입페이스 속 입체적인 홈과 명암부에 명백히 드러난다. 하지만 이 폰트의 초기 세리프 및 산세리프 본문용 버전 역시 고전 레터링에 대한 반브룩의 애정에 기초를 두고 있다. 반브룩은 바이러스폰트와 함께 반브룩스튜디오라는 디자인 스튜디오도 함께 운영한다. 이 곳에서도 프라이오리체는 광범위하게 사용되는데 반브룩 스튜디오가 디자인한 서적들, 음반 커버는 물론 심지어 「롯폰기 힐즈(Roppongi Hills)」 아이덴티티 작업에서도 이 타입페이스를 발견할 수 있다. 「롯폰기 힐즈」는 일본에서 진행된 대규모 개발 프로젝트로, 상점과 갤러리, 영화관, 호텔이 포함된 복합 건축 프로젝트다.

프라이오리체는 다른 디자이너들 사이에서도 널리 사용된다. 그런 사례 중 하나가 바로 반브룩 스튜디오 코 앞에서 일어나기도 했다. 언젠가 그는 아처 가(Archer Street), 그것도 자신의 스튜디오 길 건너편에서 어느 바의 간판을 새로 칠하는 광경을 보았다. 반브룩은 그때를 회상하며 미소를 짓는다. “간판장이가 한창 일하고 있더라. 그래서 “그 폰트 좋아요?”라고 물어 봤다. 그랬더니 그가 “네, 네. 하지만 사진 찍으면 저작권료 물릴 겁니다.”라고 답하더라. 그래서 “ 그 폰트 내가 만든 겁니다!”라고 응수했다.”

하이게이트의 자택에서 런던 중심부의 스튜디오까지는 그리 멀지 않아 차로 이동하면 금방이다. 스튜디오는 피카딜리 서커스 (Piccadilly Circus)에서 몇 블락 떨어진 아폴로 극장 바로 뒤편에 자리잡고 있다. 날씨가 따뜻할 땐 그는 자전거 통근을 즐기는 편인데 차 안에 있을 때보다 세상에 좀 더 가까워지는 것 같다고 말한다. 실제로 반브룩은 차도 없고 운전도 할 줄 모른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 같다. 사실 런던에선 자동차가 그리 필요하지도 않다. 언제나 도로가 공사 중이고 보기 싫은 재개발이 판치는 도시, 런던.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브룩은 이 도시의 활기를 사랑한다. 관광객이 들끓는 지역만 피하면 그가 좋아하는 분위기의 거리는 쉽게 찾을 수 있다. 모든 신문들이 사라진 거리, 플리트 가(Fleet Street) 는 현재 그가 가장 좋아하는 곳이다.

런던은 그가 자랐던 런던 북부의 루턴(Luton)과는 방향이 정반대다. 루턴에서 반브룩의 양친은 모두 복스홀(Vauxhall) 공장에서 일했는데 만일 공장이 문을 닫지 않았더라면, 그 역시 복스홀 공장에서 일했을지도 모른다. “너무 깎아 내려선 안되겠지만 루턴은 역사가 없는 공업 도시에 불과했다. 그래서 내가 왜 그런 종류의 타이포그래피나 분위기에 끌리게 된 건지 이해할 수 있는 것이고. 내가 자라온 환경과 정반대의 것에 끌린 셈이다.”

디자인 공부를 하기 위해 런던으로 갔을 때 그곳의 중심은 모더니즘이었다. 루턴과 마찬가지로 그에게 모더니즘이란 생기가 결여된 무엇이었다. 역사와 문화, 소통은 유럽의 백인 중산층이 꿈꾸는 대로 깔끔하고 잘 조직되었지만 궁극적으로는 협소한 미학일 뿐이었다. 그는 모더니즘으로부터 아무런 매력도 느끼지 못했고 삶을 축소하기보단 삶 자체를 반영하는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40년 전에는 멋져 보였던 모더니스트들의 건물은 지금 쓰레기와 다름없는 철거의 대상이다. 괜찮은 유럽 신문들 대부분이 사용했던 헬베티카체는 동네 고용 지원 사무실에서나 쓰이고 있다. 모든 모더니즘엔 권위와 삶의 매서움이 배어 있다. 그리고 그것은 더 이상 사회주의적인 유토피아가 아니다.

반브룩이 지난 몇 년간 내놓은 폰트를 살펴보면 몇 가지 이름에 웃음을 참기 힘들 것이다. 가령 이런 이름의 타입페이스로 레이아웃을 잡는다면 어떻겠는가? ‘배스터드(Bastard, 개새끼)’, ‘익스플리티브 (Expletive, 욕설)’, ‘모란(Moron, 얼간이)’, ‘투레트(Tourette, 신경장애)’. ‘올림퓨크(Olympukes, 토 나오는 올림픽)’이나 ‘인피덜 (Infidel, 이단자)’은? 재미는 있지만 논쟁을 불러 올 수 있을 만한 이 명칭은 반브룩식 태도를 반영하면서도 타입페이스 자체의 특징과 관련있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에게 있어 타입페이스의 이름은 여러 층위에서 작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사 전문은 CA Collection 02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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