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원예술대학교에서 디자인을 공부한 오새날과 신건모는 글꼴보기집 <커맨드 에프(Command F)>를 제작했다.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텀블벅을 통해 더욱 질 좋은 책으로 제작되는 <커맨드 에프>는 어느덧 목표 금액의 700%를 초과 달성하며 모두의 기대를 돋우고 있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아담한 크기에 80개의 글꼴을 담기까지, 요모조모 관련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커맨드 에프> 소개를 부탁합니다.
오새날(이하 ‘오’): <커맨드 에프>는 글꼴보기집이에요. 영문판과 한글판 두 종류로 제작되었는데, 영문판을 먼저 만들었고 한글판은 2년 정도 지난 후에 만들기 시작했어요. ‘커맨드 에프’는 맥 OS 환경의 단축키로, 뜻은 ‘찾아보기’예요. 이 책의 목차이자 표지인 겉면을 보고 ‘이 번호대로 찾아서 봐라’ 이거죠. 그래픽 디자이너가 대부분 그렇듯 저희도 작업하면서 서체에 관한 고민을 많이 해요. <커맨드 에프>는 어떤 서체가 좋은지에 대해 판단할 수 있도록 보여주는 소책자예요. 디자인을 하다 보면 직접 출력해서 비교해볼 일이 비일비재한데 그럴 때마다 뽑아서 볼 순 없잖아요. 그래서 저희가 대신 출력해서 묶었던 거죠. 질 좋은 종이에 좋은 상태로 뽑아두었으니 어떤 글꼴을 활용할지 참고하여 고민하면 좋겠다는 느낌으로 말이죠. 많이 쓰이고 또 잘 만들어졌다고 하는 서체들을 저희끼리 모으고, 서체 100개 리스트 같은 것들을 참고해서 목차를 구성했어요. <커맨드 에프>는 굉장히 단순한 책이에요. 아무 디테일도 없고, 단순히 서체가 몇 페이지에 위치하는지만 표지를 통해 설명하는 식이죠.
신건모(이하 ‘신’): 시각 디자인 작업을 하면서 디자인하는 것은 요리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종종 했어요. 요리에 채소나 고기 같은 재료가 필요하듯 디자인엔 텍스트나 이미지 같은 재료가 필요한 거죠. 그런데 우리가 음식을 먹을 때 반찬이 아무리 맛있어도 밥이 맛없으면 식사가 훌륭하다는 느낌이 잘 안 들잖아요. 시각 디자인에서도 역시 가장 기본이 되는 게 결국은 텍스트, 즉 글자들이더라고요. 그럼 타이포그래피는 밥 짓는 거랑 비슷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밥을 지을 땐 쌀을 고르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니 시각 디자이너는 글꼴을 잘 고르는 게 제일 중요하지 않겠냐고 생각한 거죠. 이걸 만든 저희도 글꼴에 대해서는 잘 몰라요. 보는 사람이 여러 종류의 쌀을 구경할 수 있도록 도와줄 뿐이에요.
 
 
펀딩 프로젝트 이전에 수제본한 책이 있었다고 하던데 초판과 달라진 내용이 있나요?
오: 눈에 띄는 변화는 아니지만, 맨 첫 페이지에 조그맣게 포인트를 기재했어요.
신: 이 글꼴이 몇 포인트인지 정도는 알아야 사용하는 데에 감을 잡기 수월할 거로 생각했거든요. 또, 처음에는 스테이플러 심을 박아서 거칠게 제작했는데 뜯어질 우려가 있어 조금 더 튼튼한 실제본 방식으로 수정되었어요.
 
 
저작권 문제가 어려웠을 것 같은데요. 텀블벅 페이지를 살펴보면 ‘활자공간의 폰트 라이선스’를 통해 지원받았다고 하는데, 관련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오: 서체가 샘플에 한정된 거라 해도 누군가는 이 서체들을 다 가지고 있어야 글꼴보기집을 만들어낼 수 있잖아요. 저희는 당시 학생이었고, 서체를 다 구매할 수도 없어서 고민하던 차에 대부분의 서체를 가지고 계신 이용제 선생님의 도움을 받게 되었어요. 여기에 지인들이 만든 자체 서체나 나눔고딕, 아리따 같은 무료 서체들을 포함해서 제작하게 되었죠.
신: 활자공간에서 서체 파일을 복사해준 게 아니라 아웃라인화 해주었어요. 이는 폰트의 기능을 없애고 이미지화해서 전달하는 방식인데, 서체 파일을 복사하는 것은 불법이지만 몇 글자를 이미지화하는 것까지는 서체 회사에서도 허락한 바라 이 방식을 활용해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설명을 전혀 곁들이지 않은 보기집의 형태를 취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오: 저희가 모든 서체의 비하인드 스토리나 역사를 전부 알진 못해요. ‘어떤 글꼴을 사용해야 할까?’는 사용자의 사유고 그들의 영역인 거죠. 저희는 단순히 보여만 주고, 이를 통해 고민을 도와주는 것뿐이에요. 사실 대단한 걸 만들려고 한 것도 아니고, 서체마다 설명을 다는 건 좀 구차한 것 같고. 그래서 글꼴보기집으로 구성하게 되었어요.
신: 각 서체의 역사라든지 장점이라든지 하는 건 이미 시장에 다수 나와 있어요. 한글은 잘 모르겠지만 영문 쪽은 특히 많고, 책의 두께도 꽤 되죠. 그런데 그런 것들은 이상하게 잘 안 봐지더라고요. 단순히 데이터를 보는 것 같은 느낌도 들고. <커맨드 에프>는 요즘 유행하는 편집숍처럼 누군가 미리 선별해주는 딱 그 정도의 개념이에요. 그 안에서 무엇을 선택하느냐는 사용자의 몫이죠. 저희가 제시하는 명확한 해답은 이런 거예요. ‘어떤 차이가 있을까’에 대해 비교할 수 있도록 환경을 제시하는 거죠. 예컨대 똑같은 보도니(Bodoni)인데, 제작한 회사마다 어떻게 다른지 알아보기 쉽게 만들어주는 거죠.
 
 
표지에 관해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제목보다는 목차를 눈에 띄게 구성한 점, 한글판 표지는 세로쓰기인 한편 영문판에서는 가로쓰기로 구성한 점 등이 눈에 띄는데요.
오: 영문판을 디자인할 당시 제가 쿠퍼 블랙(Cooper Black)에 빠져있었어요. 통통하고 귀여운 모양이 좋아서 그걸로 하자고 했죠.
신: 영어는 가로쓰기가 기본이라 당연하게 가로로 디자인했어요. 그 이후에 한글판을 제작하면서 이 둘이 형제처럼 보였으면 좋겠다 싶어서 ‘바람체’를 골랐어요. 통통하고 볼륨감 있는 게 비슷한 느낌이어서요. 바람체가 원래 세로쓰기 서체니까 제작 의도를 살리고자 했죠.
 
 
영문판은 세리프에서 산세리프 순서로, 한글판은 명조체에서 고딕체 순서로 하여 각 ABC, 가나다순으로 정렬한 것 같은데요. 뒤쪽으로 갈수록 목차가 그 구분에서 모호해지는 것 같아요.
신: 글꼴이 먼저 생기고, 분류는 누군가 나중에 하는 거잖아요. 그것처럼 저희도 이 글꼴들을 정리하다 보니 영문판엔 세리프와 산세리프, 한글판엔 명조와 고딕이라는 구분이 생겼고, 이 모두에 포함되지 않는 글꼴들이 남았죠. 이분법에 맞추어 안 맞는 서체를 빼는 건 아쉬워서 세리프/산세리프, 명조/고딕 그리고 기타 글꼴을 수록한 거죠. 그런데 실은, 영어는 철저하게 ABC 순서를 따르고 있지만 한글판은 벗어난 글꼴들도 있어요. 이를테면 나눔고딕 다음에 바른돋움이 바로 나와야 매끄러운데 HY헤드라인이 등장하는 식이죠. 이런 식으로 배치한 이유는 가나다순보다 좌우에 배치되는 서체를 우선했기 때문이에요. 같은 서체인데 레귤러와 엑스트라볼드가 앞뒷면에 오면 비교하기가 어렵잖아요. 이런 경우를 막기 위해 중간중간 가나다순을 어기면서 다른 서체를 삽입한 거죠.
 
 
수록하고 싶었는데 미처 못 하거나 수록하면서도 고민했던 글꼴이 있나요?
신: 지금에 비하면 영문판을 만들 땐 확실히 지식이 부족했어요. 그러다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자연스럽게 추가하고 싶은 글꼴들이 생겨났죠. 하지만 추가하려면 기존의 글꼴을 빼야 하는데 그렇게는 하고 싶지 않아서 좀 아쉬웠어요. 한글판의 경우에는, 개인 욕심으론 특정 기업이 아니라 개인이 제작한 서체들을 삽입하고 싶었는데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급하기가 어려워서 포기했거든요. 그 점이 좀 아쉬워요.
 
 
판형이 작아서 한 서체에 두 페이지씩 할애하거나 아예 판형을 키우는 방법도 생각했을 법한데, 현재 판형을 유지한 이유를 들려주세요.
신: 일단은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게 하자’라는 생각에서 작은 판형을 유지하고자 했어요. 휴대성을 우선에 둔 거죠. 제가 가방 들고 다니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이 책이 호주머니에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무겁게 들고 다닐 만한 책은 아니니까.
 
 
이탤릭, 볼드, 컨덴스드, 익스텐디드 등을 지원하는 서체의 경우 패밀리 전체를 소개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신: 패밀리 전체를 보여주면 그 회사의 서체 샘플북을 만든 거나 다름없을 거로 생각했어요. 그래서 기본형 서체만 보여주고자 한 거죠. 그런데 한글판의 경우에는 굵기에 차이를 두어 실은 서체들도 있어요. 예컨대 윤명조 730, 770 같은 게 그렇죠. 거기에 더해서 이런 이유도 있었어요. 우리는 한글을 훨씬 많이 사용하잖아요. 그래서인지 영어보다는 굵기가 다른 종류의 서체를 사용할 기회가 더 많아요. 그러다 보니 굵기가 다른 샘플도 필요하단 생각이 들었어요.
 
 
샘플 텍스트에 관해 이야기해보고 싶어요.
오: 저희가 중요하게 생각한 건 되도록 다양한 자음과 모음이 들어가고, 초성과 종성에 자소가 균등하게 분배된 텍스트였어요. 이미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한글 팬그램이 있지만, 그것보다는 저희 마음에 드는 멋진 글귀를 넣는 쪽이 좀 더 쿨해 보일 것 같았어요.
 
 
텀블벅 펀딩이 현재 700%를 넘어섰습니다. 목표 금액을 초과 달성한 만큼 따로 계획하신 바가 있으신가요?
오: 목표 금액이 초과하는 만큼 만들어야 할 책도 많아지는 거라 여유가 있을지 모르겠어요. 유지원 선생님께서 전시를 기획한다든지 기념 파티를 해보는 건 어떻겠냐고 제안해주셨는데, 딱히 전시할 거리가 없기도 하고, 아직 생각한 건 없어요. 얼마 전 인쇄소에서 미팅을 했는데 제작비용이 얼마나 나올지도 모르겠고요.
 
 
<커맨드 에프>를 만들면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무엇인가요?
오: 한글판 제작이요. 영문판은 2주 만에 완성했어요. 교내에 그래픽 디자인과 학생들을 위한 제작실이 있어서 그곳의 도움을 많이 받았죠. 그러나 한글판을 만들 땐 둘 다 학생도 아니었고, 이전과 비교하면 고민해야 할 지점이 많았어요. 글꼴 선택에도 시간이 오래 걸렸고요.
 
 
<커맨드 에프>에서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글꼴이 있다면 꼽아주세요.
신: 영문판 40번에 있는 악치덴츠 그로테스크(Akzidenz Grotesk)와 한글판 71번의 SM3 견출고딕이요. 저에게 타이포그래피 관련하여 지대한 영향을 주신 분이 워크룸의 김형진 선생님인데 그분이 추천해주신 것들이에요. 둘 다 좀 투박하지만, 글자의 원형을 가장 잘 담고 있는 서체라고 생각해요.
오: 저는 영문판 78번의 옵티마(Optima)와 한글판 74번의 HY 그래픽이요. 사실 저는 옵티마의 매력을 잘 몰랐는데, 타이포그래피 소모임 활동을 통해 그 매력을 알게 되었어요. 당시 건모 씨가 옵티마와 어울리는 글꼴로 HY 그래픽을 추천했는데 그 둘이 섞인 걸 보고 완전히 마음을 빼앗겼죠.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서체나 타이포그래피에 관해 새롭게 배운 바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신: 영문이나 한글이나 마찬가지인데요, 이름이나 주요 특징을 텍스트로만 인지하고 있던 글꼴들이 있었어요. <커맨드 에프>는 그런 글꼴들을 직접 확인하고 공부할 수 있던 기회였지요. 머릿속으로만 생각했던 것과 실제 모양에 차이가 있어 괴리감을 느끼는 글꼴도 있었어요. 또, 잘 알고 있던 글꼴도 ‘이게 이렇게 생겼었나?’ 하고 문득 낯설어하기도 했고요.
 
 
앞으로의 계획이나 목표가 궁금합니다.
신: 이제 막 시작한 ‘낮인사’라는 스튜디오로 많은 사람에게 유용한 작업을 진행하고자 해요. 저 외에 두 분이 더 있는데, 다른 두 분은 실제로 서체를 만드는 분들이기도 해요. 글자와 친숙한 스튜디오가 되어보려고요. 낮인사라는 이름으로 출판도 생각하고 있어서 얼마 전에 사업자 등록과 함께 출판 등록도 마쳤습니다.
오: 표지 디자인에서나 본문 디자인에서나 책의 맥락과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명확하게 보이는 것이 좋은 책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저는 좋은 책을 많이 만들고 싶어요. 또, 멋진 것들을 보고 즐거운 소비를 하면서 건강하게 잘 살고 싶고요. 이것이 저의 계획입니다.
 
 
 
 
 
오새날
SHINILSA.TUMBLR.COM

계원예술대학교에서 정보지식디자인을 공부했다. 타이포그래피 소모임인 텍스트(.txt)의 구성원으로 활동하던 2013년, 영문 글꼴에 관한 관심에서 <커맨드 에프(Command F)> 영문판을 만들었으며, 2015년 비슷한 취지에서 한글판을 제작했다. 현재 도서출판 마티에서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신건모
INSTAGRAM.COM/NAZINSA

계원예술대학교에서 그래픽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했다. 오새날과 텍스트로 활동하며 함께 <커맨드 에프>를 만들었다. 현재 오경섭, 채희준과 함께 ‘낮인사’라는 이름으로 그래픽 디자인을 하고 있다.
 
 
 
 
 
위 이미지: <커맨드 에프> 영문판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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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판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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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판 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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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판 내지
 
 
 
 
 
 
 
 
 
 
 
이 기사는 ‘CA 2016년 5월호 : 일러스트레이션의 도약’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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