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그래픽 디자인 작업 중 잊기 힘든 이미지를 하나 꼽을 때 ‘1999년 AIGA 디트로이트 포스터’를 떠올리는 사람이 꽤 많을 것이라 믿는다. 자신의 상반신을 캔버스 삼아 포스터의 내용을 직접 칼로 새긴 스테판 사그마이스터의 작업인데 상당 부분 충격적인 만큼 호불호가 갈리는 결과물이지만 어떠한 의미로든 놀랍다는 수식어에는 반대하기 어려울 테다. 이처럼 항상 색다른 시도를 주저하지 않았던 그는 그 신선함의 파급력을 증명이라도 하듯, 지난 <CA> 4월호에서 디자인계 동료들의 투표로 선정하는 ‘지난 20년간 가장 영향력 있는 디자이너 20인’ 중 당당히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오는 9월 국제그래픽연맹(이하 AGI) 서울 총회로 한국을 찾을 그를 미리 만나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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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AIGA 뉴올리언스 총회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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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AIGA 디트로이트 강연 프로그램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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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바이스 501 홍보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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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SVA)를 위한 <테이크 잇 온(Take It On)> 포스터 시리즈
 
 
 
자기소개할 때 항상 ‘뉴욕에 거주하며 일하고 있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디자이너’라고 말씀하시는데요. 오스트리아 태생이라는 정체성이 당신의 작업에 영향을 끼치는 부분이 있나요?
저는 24살 때까지 쭉 오스트리아에서 대부분의 정규 교육을 받았어요. 이 시기는 뇌가 아직 자라고 있는 때이므로 제 삶에 이는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실이라고 할 수 있죠. 저의 가장 깊은 연결고리 대다수는 이때 구축되었으니까요. 제가 20년 넘게 뉴욕에서 살고 있고 이곳을 사랑한다 하더라도 저는 여전히 오스트리아 시민이고 어쩌면 더욱 중요한 것은 제가 오스트리아 사람이라는 걸 매우 의식하고 있다는 점이에요.
 
15살 무렵부터 디자인 작업을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디자이너라는 직업에 대해 회의감을 가졌던 적은 없었나요?
맞아요. 저는 15살 때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죠. 그때 <알프호른(Alphorn)>이라는 지역의 자그마한 청소년 잡지 일을 했었는데 그곳에서 제가 기사를 쓰는 것보다 레이아웃을 만드는 데에 훨씬 더 관심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더군다나 앨범 커버 디자인에 매료되어 있었는데 살면서 이런 일을 하면 정말 멋지겠다고 생각했죠. 물론 지난 시간 동안 종종 그리고 어떨 땐 길게 의심의 시기가 있었어요. 하지만 제가 정말로 좋아하는 일은 보수가 특별히 없어도 하고 싶어서 하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대부분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었던 최상의 전략은 안식년을 갖는 것이었고요.
 
몸에 글자를 직접 새기는 등 육체적으로 굉장히 공을 들이거나 수공예적인 요소를 포함하는 몇몇 작업을 선보인 바 있는데요. 이러한 방식을 선호하는 이유가 있나요?
모더니즘의 도래로 건축에서나 제품, 그래픽 작업에서조차 기계가 모든 것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1920년대에는 이것이 매우 그럴듯했어요. 당시 문화적 풍토를 반영하기 위해 장식성을 없애고자 하는 욕구가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이처럼 기계가 만든 ‘객관적’인 방향이 거의 100년간 현상 유지 상태였으므로 더 인간적이고, 수공예적이며 주관적이고 자연적인 접근방식이 커뮤니케이션에서 훨씬 효과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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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의 잡지 <카피(.copy)>의 속표제지 작업으로 ‘Having/ guts/ always/ works out/ for/ me’ 문구가 여섯 스프레드로 잡지 전반에 걸쳐 나뉘어 들어갔다.
 
 
 
스튜디오를 작은 규모로 유지하고자 클라이언트 명단을 늘리는 데에 집중하지는 않는다고 들었어요.
우리가 원하는 일을 중심으로 고르는 사치를 느긋이 즐기고 싶어서 저는 항상 운영비를 적게 유지하고자 하는데요. 이것이 호화스러운 사무실보다 우리에게 더 큰 만족감을 줍니다. 또한, 이처럼 클라이언트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지 않고, 일반적이지 않은 방향을 추구하는 자유를 가지며, 민첩하고 집중하는 상태를 유지하면서 책임감을 느끼고, 우리 모두 디자인하면서 작업의 모든 측면에 참여할 수 있기에 우리는 지루해하지 않을 수 있어요. 미팅을 가질 필요도 별로 없고요. 그리고 내부적으로 오해가 생길 일이 별로 없으니 우리가 디자인하는 것이 대부분 실제로 제작됩니다.
 
7년마다 안식년을 보내는데 이 기간에는 디자인 작업을 전혀 하지 않나요?
안식년 동안 작업에서 완전히 신경을 끄려는 바람이 있는 건 절대 아니고요. 스튜디오 사람들도 다들 작업을 하고 저도 보통 때보다 이때 작업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 같아요. 단지 클라이언트 잡을 하지 않고 대신 미래에 클라이언트를 위한 결과물로 도출될 수도 있는 약간의 실험들을 추구하는 데에 집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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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 리드의 앨범 <Set the Twilight Reeling> 패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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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번과 브라이언 에노의 앨범 <Everything that Happens Will Happen Today> 패키지
 
 
 
이전에 앨범 커버를 여럿 디자인한 바 있는데요. 요즘은 멋진 디자인의 바이닐을 모으고 계시고요. 당신이 앨범 커버를 더 이상 디자인하지 않는 것을 앨범의 디지털화와 연관 지어 볼 수 있을까요? 바이닐 커버를 디자인하고 싶은 마음은 없는지요.
우리는 주로 앨범 커버뿐만 아니라 CD 패키지를 디자인했던 것인데요. 당시 저는 20쪽짜리 북클릿을 디자인하는 기회가 CD의 작은 판형이라는 단점을 상당 부분 상쇄한다고 생각했어요. 대다수 앨범은 커버만 제대로 갖추고 있었는데 사실 이는 뒷면이 있다뿐이지 작은 정사각형의 포스터를 디자인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데 이보다 북클릿이 비주얼 스토리를 전달할 가능성이 컸죠. 하지만 1980-90년대 밴드 중 아주 소수만 게이트폴드나 북클릿을 허용했거든요. 근래에 굉장히 공을 들인 새로운 바이닐 앨범들을 보면 이 점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 같아요. 최상의 경우에는 완전한 종합 예술 작품(Gesamtkunstwerks) 같기도 하고요. 하지만 아니요, 새로운 바이닐 디자인은 보다 젊은 세대의 디자이너들에게 맡기고 싶어요.
 
지난달에는 폴라 셰어를 인터뷰했는데 그녀도 대단히 아름다운 앨범 커버들을 디자인했죠. 이처럼 1980-90년대 음악 산업의 황금기에 이 분야에서 멋진 디자인 작업이 많이 나왔던 것 같아요. 같은 맥락에서, 오늘날에는 훌륭한 디자인 작업이 주로 어떤 분야에서 탄생한다고 보시는지요?
글쎄요, 사실 저는 지난 2년간 바이닐 커버로 등장한 작업들이 디자인 분야 전체에서 나온 것 중 최고인 것 같아요. 이 부문은 사실 수익성이 높지 않을 텐데 그만큼 여기서 일하는 대다수 사람은 애정으로 이 일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죠. 또한, 이는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사람이 훨씬 적다는 걸 의미하기도 하는데 이 점은 일반적으로 더욱 양질의 작업이 나올 수 있게 돕기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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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드리치현대미술관 브랜딩 작업
 
 
 
전시 <해피 쇼(The Happy Show)>나 영화 <해피 필름(The Happy Film)> 등을 통해 ‘행복’에 관한 작업을 이어가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두 번째 안식년 때 저는 디자인에 의미 있는 무언가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해피 필름>이 알맞아 보였죠. 이는 제가 이 분야 안에서 상당한 연구와 실험을 하게 했고 또한 저는 우리가 무엇을 하든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걸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더불어 도전적인 매체로 작업할 기회이기도 했는데 이전에 영화 작업을 해본 적이 전혀 없었거든요. 책이라면 아마 훨씬 쉬웠을 수도 있는데 말이죠.
 
시대가 변하고 기술과 툴에 대한 접근성이 커지면서 전공과는 관계없이 누구든 원하면 디자이너가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의견도 있습니다. 이에 동의하시나요?
저는 누구든 디자이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무언가를 잘하고 싶다면 원동력과 헌신 그리고 욕구를 갖출 필요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 정규 교육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티보 칼맨, 데이비드 카슨 그리고 제임스 빅토르만 보더라도 이들은 디자인 학교에 간 적이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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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 쇼> 전시 모습
 
 
 
스테판 사그마이스터
STEFAN SAGMEISTER

SAGMEISTERWALSH.COM

오스트리아 출신의 디자이너로 비엔나응용예술대학교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한 후 뉴욕으로 건너와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수학했다. 1993년부터 뉴욕에서 자신의 스튜디오를 시작해 루 리드, 토킹 헤즈, 롤링 스톤즈 등의 앨범을 디자인했고 2012년에는 제시카 월시(Jessica Walsh)를 파트너로 맞이하며 현재 사그마이스터 앤 월시(Sagmeister & Walsh)라는 이름으로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다.
 
 
 
국제그래픽연맹 2016 서울잔치
AGI SEOUL 2016

A-G-I.ORG

일시: 2016년 9월 24일-9월 29일
장소: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국제그래픽연맹(Alliance Graphique Internationale, 이하 AGI)은 1951년에 설립된 단체로 현재 30여 개국, 400여 명의 그래픽 디자이너가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매해 회원국에서 연례 총회 및 전시회, 강연회를 개최해 디자인 분야의 직업윤리를 되돌아보고 디자인 업계의 발전 방향을 모색하는데 오는 9월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AGI 서울 총회를 연다. 24-25일 양일간 AGI 회원들이 자신의 작업, 철학 등을 나누는 공개 강연회 ‘AGI OPEN’과 회원끼리의 비공개 컨퍼런스 ‘AGI CONGRESS’를 중심으로 9월 24일부터 29일까지 DDP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CA>는 AGI SEOUL 2016을 고대하며 지난 6월호부터 4-5회 걸쳐 AGI OPEN에서 강연 예정인 연사들의 이야기를 미리 청해보고자 한다.
 
 
 
 
 
 
 
 
 
 
 
이 기사의 전문은 ‘CA 2016년 7월호 : 개척하거나 사라지거나’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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