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해방된 관객
지은이: 자크 랑시에르(Jacques Ranciere)
옮긴이: 양창렬
디자인: 박미정
출판사: 현실문화
판형: 217 × 145mm
페이지: 256쪽
가격: 18,000원
 
 
 
그 연극 재미있을까? 그 사람 연기 잘하나? 연극을 보기 전에 흔하게 따져보는 요소들이다. 연극이 끝난 후엔 그 장면은 무슨 메시지를 포함하더라, 배우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것이더라 하는 감상이 주를 이룬다. 혹은 담고 있는 메시지가 없고 전하고자 하는 바가 불분명하다고 실망하는 경우도 있다. 연극을 둘러싼 이 일련의 과정은, 관객의 감상이 어떻든지 간에 매우 일방적인 형태다. 연출가가 연출한 바를, 배우가 연기하는 바를 관객은 그대로 수용하여 전문가의 의도를 찾는 데에 여념이 없다는 점이 그렇다. 전문가가 가르쳐야 한다는 시각은 이미 지능의 불평등을 전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경계해야 할 명제다. 자크 랑시에르는 ‘학생이 배워야 하는 것’은 ‘스승이 가르치는 것’이고 ‘관객이 보아야 하는 것’은 ‘연출가가 보게 하는 것’이라는 동일성의 논리에 반기를 든다. 스승은 알고 있는 것을 전달할 때가 아니라 모르는 것을 전달할 때, 즉 제자 스스로 스승이 알려주지 않은 것을 스승에게서 찾아낼 때 비로소 진정한 가르침이 성립되며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해방된 관객>에서는 자크 랑시에르가 전작 <무지한 스승>에서 언급한 불평등의 구조를 극으로 도입하여 사유를 확장한다. 랑시에르는 연출가의 의도를 관객이 그대로 흡수하는 것은 설령 100%의 이해일지라도 결코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이에 브레히트와 아르토를 빌려 연극과 관객의 거리를 서술하는데, 복잡한 이야기는 차치하더라도 연극과 관객 사이에는 일방적인 화살표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는 것은 분명하다. 랑시에르는 관객이 연극 안에 갇혀 연출가의 메시지만을 흡수하는 것을 경계한다. 여기에서 ‘해방된 관객’이란 개념이 도출되는데, 관객이 연극이라는 결과물을 자신이 쌓아온 경험에 빗대어 새로운 메시지를 만들고 체화할 때야 온전한 소통이 가능해지면서 불평등에서 해방된 관객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설사 연출가의 의도는 A였고, 관객의 해석은 Z가 된대도 랑시에르는 이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 A가 A’가 되는 것보다 A가 Z가 될 때 비로소 동일 선상에 위치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며 필히 떠올린 장면들이 있다. 선생이 가르치는 대로, 조사 하나 틀리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필기하고 생각 없이 두뇌만 가동되는 순간이나 영화를 보고 나서 뭘 말하고 싶은 것인지 연출가의 의도만 가려내던 순간들 말이다. 세상엔 다양한 공부법이 있고 감상법이 있고 개중 어느 것도 감히 틀렸다고 할 순 없지만 한 가지는 분명해 보인다. 나를 기준으로 비판과 체화를 하지 않는 이상 불평등 구조는 순환될 것이며, 이것이 불평등인지 모른 채 원작자의 메시지만을 좇으며 잘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될 것이다. 독해 없이 품사의 종류만으로 1초 만에 답을 찾아 등급을 획득하는 토익, 후기 하나를 작성할 때에도 연출가의 의도와 빗나간 해석이면 어쩌나 전전긍긍하는 관객은 불평등의 논리에 도태되어 있다. 스승은 앎을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제자가 스스로 해방되도록 돕는 존재여야 한다는 자크 랑시에르의 말을 떠올리며, 원인과 결과가 완벽하게 동일할 때에야 만점을 받는 이 시대에서 해방된 관객이 되기 위해 스스로 생각하고 노력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제는 결과물을 전유하고 나의 것으로 만듦으로써 불평등을 인지하고 해방될 필요가 있다.
 
 
 
 


 
 
 
■ 출판사 책 소개
 
컨템포러리 총서 3권. 랑시에르가 지적 해방의 사유와 오늘날 관객에 관한 물음에 답하는 책이다. 랑시에르는 <무지한 스승>에서 교육의 문제를 지적 능력의 평등이라는 철학적.정치적 문제로 옮겨 사유하는 지적 모험을 펼쳤다. <해방된 관객>은 <무지한 스승>에서 시작된 또 하나의 모험담으로, 지적 불평등의 고리, 지적 해방의 사유를 연극과 관객이라는 예술의 영역으로 확장해 오늘날 ‘해방된 관객’, ‘평등한 관객’의 자리를 찾는다.
 
랑시에르는 관객이 하는 것은 결국 ‘주의’라고, 주의란 시선이나 청취를 끌고 감으로써 관객이 제 고유의 저작을 만들어내는 것을 가리킨다고 전했다. 다시 말해, 관객이 된다는 것은, 자신이 읽거나 보거나 들은 것이 낳은 새로운 가능태들에 의거해 관객이 기존의 것을 변이시키는 조건들을 구축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 지은이 소개
 
자크 랑시에르(Jacques Ranciere)
1940년 알제리에서 태어났다. 파리 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1969년부터 2000년까지 파리 8대학에서 미학과 철학을 가르쳤다. 루이 알튀세르의 ‘자본론 읽기’ 세미나에 참여해 마르크스의 비판 개념에 관한 논문을 썼으나, 68혁명을 경험하면서 알튀세르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이론적 실천이 내포한 ‘앎과 대중의 분리’, 그들의 이데올로기론이 함축한 ‘자리/몫의 배분’을 비판했다. 결국 1974년, <알튀세르의 교훈>을 발표하면서 스승 알튀세르와 결별했다.
 
이후 19세기 노동자들의 문서고를 통해 그들의 말과 사유를 추적해나갔고, 이 연구는 <노동자의 말, 1830/1851>(1976), <평민 철학자>(1983) 같은 편역서 및 국가박사학위 논문인 <프롤레타리아들의 밤>(1981), <학자와 그의 빈자들>(1983), <무지한 스승>(1987) 같은 저서의 토대가 됐다. 구소련의 붕괴와 더불어 선포된 정치의 몰락/회귀에 맞서 정치, 평등, 민주주의에 대해 고민하며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1990, 1998)와 <불화>(1995)를 발표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1990년대 중반부터는 미학과 정치의 관계를 사유하는 데 집중하면서 <무언의 말>(1998), <말의 살>(1998), <감각적인 것의 나눔>(2000, 국내에는 <감성의 분할>로 번역되었다), <이미지의 운명>(2003), <미학 안의 불편함>(2004), <해방된 관객>(2008), <아이스테시스>(2011), <평등의 방법>(2012) 등을 펴냈다.
 
 
■ 옮긴이 소개
 
양창렬
고대 원자론 및 현대 정치철학을 연구하며 글을 쓰거나 책을 번역하고 있다. <알튀세르 효과>(2011), <현대 정치철학의 모험>(2010) 등을 공저했으며, 자크 랑시에르의 <평등의 방법>(근간), <무지한 스승>(개정판/2016),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개정판/2013)를 번역했다.
 
 
 
 
 
 
 
 
 
 
 
이 기사는 ‘CA 2016년 8월호 : 국제 스포츠 행사와 브랜딩’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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